[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이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며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 철도 사업 등 정부가 추진하려고 했던 남북교류사업 추진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했던 금강산 등 북한 주요 지역에 대한 개별관광이나 철도·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남북 보건협력 등은 당분간 추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 당국 사이의 연락과 실무적 협의, 민간단체들의 교류협력사업에 필요한 소개와 연락, 자문, 자료교환, 접촉지원 등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 전환이 이뤄진다고 해도 남북교류사업 추진 계획을 설정하고 현실화하는데 까지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실제 산림협력과 체육, 보건의료협력, 통신 등 각종 분야의 남북 간 회담이나 실무 회의가 연락사무소에서 열렸다.
2018년 11월 '금강산관광 20주년 남북공동행사'에 참석한 남측 초청인사들이 금강산 구룡연 노정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북한이 남북합의로 비무장화된 지역에 진출하고 남쪽을 향해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개성공단에 북한군이 주둔하게 되면 개성공단의 정상화는 사실상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연락사무소 폭파에 앞서 "북남합의로 비무장화된 지역에 다시 진출해 전선을 요새화하겠다"고 밝혀 개성공단에 북한군이 진주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금강산 역시 그동안 남측 관광객이 이용하던 통로들에 군부대를 배치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관광 재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한 보건·의료·방역 협력 방안 추진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을 해나가면서도 남북관계에 있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진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DMZ 남북 공동실태조사와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후속 조치, 남북 관광분야 협력 등을 역점 사업으로 정해 추진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판문점 견학·남북철도사업 등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적극 발굴·추진해나가겠다"며 "보건의료, 재난재해, 환경 등 비전통적 안보협력, 철도 연결·현대화 등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적극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적으로 동해북부선(강릉~제진) 철도 연결, DMZ 실태조사, 판문점 견학 등을 우선 추진해 평화경제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최근까지 남북협력 사업 추진을 강조해왔다. 문 대통령은 전날 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에 보낸 영상메시지를 통해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시작 △이산가족 상봉 등을 거론하며 "모두 대화가 이룬 성과"라고 언급했다. 또한 지난 4월 4·27 판문점선언 2주년 당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보건 협력, 동해북부선 연결 등을 강조했다. 지난달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는 "남북철도 연결과 북한 개별관광 제안 등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는 대로 우리의 제안이 북한에 받아들여지도록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설득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문 대통령과 정부가 가졌던 희망적 관측은 무색해졌다. 여기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9일 북한의 통신선 차단에 이어 추가조치로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군사적 행동을 보이면서 9·19 남북군사합의도 파기될 위험에 놓였다. 실제 단행될 경우 남북관계는 사실상 문재인정부 초기로 회귀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북미관계도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전의 '대결 국면'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실상 북미관계가 과거로 회귀했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상당하다. 북미 협상의 부진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제사회를 의식해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지 않는 한국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