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최근 2년간 병·의원에서 사망자 명의를 도용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건수가 6000건을 넘었지만, 처벌 사례는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국민건강 보험 수진자 조회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12년 전 사망한 사람의 이름으로 약을 처방받는 사례도 나왔다.
사망자 명의를 도용한 약품은 대부분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마약, 대마와 함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남용시에는 환각증세 등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판단 하에 적정량을 투입해야만 한다.
19일 국회 보건복지위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2년간(2018~2019) 병·의원 등에서 사망자 49명의 명의로 총 154회에 걸쳐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는 6033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 기관이 사건을 수사 중이지만 현재까지 처벌받은 경우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명의 도용이 가능했던 것은 현행 건보 수진자 시스템에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보 수진자 시스템에서는 '사망자'와 '자격상실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망 여부가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명의도용자가 망자의 성명과 주민번호만 제시하면 건보 혜택을 받지 않고 사망자 명의로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법 등에도 진단·처방 시 반드시 본인 확인을 하도록 강제하는 의무 조항은 없다.
강병원 의원실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한 처방자는 지난 2007년 사망한 사람의 명의로 12년이 지난 2019년에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았다. 또 다른 처방자는 2018년 11월부터 1년간 의원을 옮겨 다니며 사망자 명의로 30번에 걸쳐 청 3128개에 달하는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신고 후 3년이 지나 사망자 명의로 마약류 처방을 받은 사람도 3명, 4년은 4명, 5년은 2명, 6년과 7년은 각 1명, 12년은 1명이었다.
강 의원은 “사망신고 후 12년 지난 망자의 이름으로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가능하도록 건강보험 수진자 조회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있었다”며 “건강보험 수진자 조회 시스템을 즉각 개편해 사망자 명의로 이뤄지는 진료와 처방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 사진/강병원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적발된 건수 중 가장 많이 처방된 약은 알프라졸람(정신안정제)으로 총 2973개에 달했다. 이 외에도 졸피뎀(수면제) 941개, 클로나제팜(뇌전증치료제) 744개, 페티노정(식욕억제제) 486개, 로라제팜(정신안정제) 319개, 에티졸람(수면유도제) 200개, 펜터민염산염 120개, 디아제팜(항불안제) 117개, 펜디라정(식욕억제제) 105개 등 순으로 불법 처방이 이뤄졌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