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삼성을 대한민국 최대를 넘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끌어올린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고속 성장을 이룬 한국의 정경유착 중심에 서 있다는 비판도 있으나 특유의 공격적인 경영 행보로 오늘날 삼성이 있기까지 이바지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5살 때 서울로 상경해 혜화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유학생활을 했다. 서울사대부중·부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에 입학했으나 부친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65년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이듬해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1967년 그는 홍진기 전 중앙일보 사장의 장녀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결혼해 슬하에 재용(삼성전자 부회장), 부진(호텔신라 사장), 서현(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을 뒀다.
1968년 부친의 권유로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로 재직했던 이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삼성 반도체의 초석을 다진다. 이후 1975년 33살의 나이에 삼성공제회 이사장에 취임한 뒤 36살이던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과 삼성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며 그해 11월 삼성전자와 반도체통신을 합병한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개하자 그해 11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셋째 아들이었으나 두 형인 이맹희 전
CJ(001040)그룹 명예회장과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의 신임을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을 이끄는 총수 자리에 앉았다.
이후 삼성을 초일류기업 반열에 올리겠다는 그의 다짐은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졌다. 1994년 삼성은 국내 기업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고 휴대전화 애니콜의 첫 제품 'SH-770'을 출시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삼성 브랜드 가치는 2003년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듬해 세계 최초로 1기가바이트 '원낸드 퓨전 메모리'를 개발했고 수출 5000억달러(약 564조원)을 달성했다.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
그는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대표 먹거리라 할 수 있는 반도체와 휴대폰 탄탄한 입지는 모두 이 회장의 과거 과감한 투자 결단에 따른 산물이라는 게 현재 재계 공통된 시각이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를 토대로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하는 '신경영'이었다.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그간 이룩한 경영성과는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기업인으로 살며 과오도 있었다. 경영활동을 이어오면서 여러 의혹의 중심에 서며 수차례 검찰청과 법원 포토라인에 섰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처음 검찰 소환을 받았던 그는 이듬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복권돼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해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몰아줬다는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으로부터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5년에는 삼성 임원들이 정치권과 검찰에 로비를 벌였다는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이 터져 곤욕을 겪었다. 서면조사를 받았던 이 회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삼성의 정경유착 이미지가 심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2007년에는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찰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과 함께 이건희 일가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등을 폭로했다. 이 회장은 특검 조사를 받았고 차명계좌 등이 드러나면서 경영에서 퇴진했다. 이후 2009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2009년 12월 특별 사면을 받아 이듬해 다시 회장으로 복귀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