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뉴 스페이스 시대의 구태

입력 : 2020-12-15 오전 6:00:00
뉴 스페이스, 새로운 항공우주 시대를 위한 국가 및 민간 기업의 경쟁이 치열하다. 새로운 개념의 기술과 획기적인 성과도 나오고 있다. 특히 민간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항공우주는 국가의 전략적인 지원과 막대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는 분야였는데, 민간 기업이 발상을 뛰어넘는 도전에 성공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는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에 성공한 후 로켓 발사에 드는 막대한 비용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예산과 조직이 급속히 줄어드는 시련을 겪었다. 1번밖에 못쓰는 발사체 비용을 줄이고자 우주왕복선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역시 비용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개발을 중단해야 했다. 
 
NASA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한 민간 기업이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2002년에 창업된 스페이스X는 로켓을 회수하여 재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스페이스X의 창업자는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다. 스페이스X가 항공우주 분야에서 거둔 성과는 눈부실 정도이다. 2008년 민간 로켓의 지구궤도 도달, 2010년 궤도 비행 우주선의 회수, 2012년 국제 우주 정거장에 우주선 도킹, 2015년에 기어코 로켓을 역추진해 착륙시키고 2017년에 재사용하는데 성공했다. 올해에는 민간인 우주비행사가 유인 우주 운송에 나섰다. 2025년에는 1만2천개의 소형 위성으로 전세계에 위성 인터넷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재활용 로켓으로 한 번에 60개씩 현재까지 700기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스페이스X와 비슷한 시기에 발사체 개발에 나선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2005년 발사를 목표로 러시아와 협력하여 2000년 나로호 발사체 개발을 시작했으나, 발사가 2007년으로 연기되고, 2009년과 2010년 2차례의 발사 실패 후 2013년에 3차 발사에 성공했다. 세계 11번째로 자국 기술로 우주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국가가 되었다. 이후 1.5톤급 실용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한 누리호 개발에 착수하여 2018년에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 2021년 2월로 누리호 발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X와 점점 더 벌어지는 격차를 느끼게 한다.
 
물론 스페이스X의 성과는 항공우주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차이도 있지만,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원장 징계 문제를 바라보면 격차의 원인은 다른 데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 보면 항우연 원장 징계의 시발점은 원장의 폭행 사건이다. 누리호 발사체 사업단과의 술자리에서 연구자가 원장에게 "기관 경영 잘하라"는 등의 발언을 했고, 원장은 연구자들과 설전을 벌이다가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과기부 감사에서 원장이 경고를 받고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다시 특별감사를 요청해 과기부에서 원장 해임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원장 임기가 50여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임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원장의 징계를 넘어 해임 사태까지 이르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일각에선 해임 추진은 현 원장의 '발사체' 사업단의 조직 재편시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 등으로 촉발된 뉴스페이스 흐름에 항우연이 뒤처짐에도 불구하고 미래 대비가 부족하다고 인식한 원장은 2018년 취임 이후 발사체 본부 이외에 56개로 분화되어 있던 조직을 28개 대조직으로 개편했다. 사일로화된 조직의 칸막이를 없애고 매트릭스 조직화하는 결단을 했다. 공통기술 연구조직과 일몰형 체계개발조직으로 이원화 및 상호 연계를 통해 조직의 기술역량과 사업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이었다. 매트릭스 조직은 NASA에서 사상 처음으로 시도해 선진 거대 연구기관이 공통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조직 원리다. 
 
그러나 2010년부터 총 1조9572억원이 투입되고 항우연 인력의 3분의1이 참여하는 거대 발사체 사업단은 원장의 지휘 범위 밖이었다. 문제가 있는 발사체 팀장 교체도 과기부 장관 반대에 막히는 정도였다. 소형발사체·재사용 발사체 등 새로운 발사체와 엔진 개발 등을 위해 시도는 발사체 본부에 의해 무산됐다. 20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사업체계를 건드리지 말라는 요구였고 과기부도 그 손을 들어줬다. 이같은 상황 속 과기부가 원장 해임까지 결정한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해외의 경쟁자들은 혁신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같은 외부변화에는 눈 감고 정해진 목표로만 계속 가겠다는 것은 다름 아닌 구태의 모습이다. 과기부가 정치권의 눈치 보기 속 구태를 묵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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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