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동과 자동화. 같은 말인데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다. 전자동 제품은 인기있는 광고 문구에 들어가는 단어다. 전자동 커피머신은 원두커피를 즐기는 여러 단계를 자동화해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편리함을 연상하고, 이같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맞닿아 있다. 그런데 자동화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기계의 자동화와 노동의 자동화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로봇에 의한 자동화,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라는 단어를 접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연상하는 사람이 더 많다. 2017년의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중 85%가 로봇의 부상을 제한하는 정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자동 제품은 좋은데, 일자리를 위협하는 노동의 자동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것이다.
노동의 자동화에 대한 반감은 오래되었다. 산업혁명이라는 것 자체가 증기기관이라는 동력의 자동화에 의한 것이니, 인류 전반적으로는 축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화는 많은 사람들, 특히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너무나 뛰어난 생산성이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산업혁명은 러다이트 운동을 불러왔다. 획기적인 자동화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노동자의 일자리는 기계에 의해 대체되었고, 위협받았다. 그렇지만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가 계속 사라지면 일자리 숫자가 줄어야 할 텐데, 인구의 증가보다 일자리의 증가는 더 빨랐다. 그래서 나온 용어가 기술적 실업이다. 신기술에 의한 구기술의 대체기에 구기술에 익숙한 노동자들은 작업 현장에서 배제되지만, 신기술과 관련된 고소득 직업,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기술적 실업이라는 개념은 자동화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참고 견디면 좋은 시대가 된다는 이데올로기다. '자동화에 따른 부작용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혁신을 제약해서는 안된다, 자동화를 제약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저하되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양극화도 일시적인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혜택이 골고루 퍼지게 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을 추구하며 세계 최강국이 된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에 이 이론은 전 세계가 받아들여야 할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고서가 미국, 특히 기술을 강조하는 MIT 공과대학에서 나왔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로봇 등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여러 연구보고서가 나오던 2017년에 MIT 라파엘 라이프 총장은 교수들에게 우리 시대의 결정적인 도전에 대한 연구를 요청했다. 첨단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노동력을 변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어떤 정책이 디지털 경제 시대에 미국인들에게 기회를 창출할 것인지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연구진은 기업 임원, 공무원, 교육자 및 노동계 지도자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3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11월에 “미래의 일: 지능형 기계의 시대의 더 나은 직업 만들기”라는 보고서로 발간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충격적이다. 미국의 대부분 노동자들이 가난해지고 있다. 미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임금 격차가 더 크며,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적고 세대 간 이동성이 적다. 불평등에 의해 성장의 혜택을 못 받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 노동자의 처우 악화는 기술의 결과라기보다는 나쁜 제도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기술적 실업과 양극화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제도의 태만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책으로 노동자의 더 많은 힘, 목소리 및 교섭력을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 실업보험 확대를 비롯해 가사 및 돌봄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와 같은 직종에서 단체교섭이 가능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일자리 없는 미래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며, 부족한 것은 시장의 요구에 맞춘 노동자 훈련, 직업교육이라고 지적했다.
자동화와 혁신에는 고통이 따른다. 그렇지만 당연한 것은 아니다. 올바른 정책이 고통을 줄이고 자동화와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2021년, 더 자동화되는 시대에 더 균형 잡힌 정책이 요구된다.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