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유승 기자] 보험사들이 '제판(제조·판매)분리'에 속도를 내면서 노동조합과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사측은 판매조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구조조정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한화생명(088350) 노조 관계자는 1일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 이직하면 고용 안전성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일반적으로 자회사형 GA는 사업가형 지점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큰데, 이럴 경우 정규직이었던 직원들이 한 순간에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4000명 규모의 회사와 1400명 규모의 회사는 다르지 않느냐"면서 "최근에 입사한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취업사기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한화생명은 초대형 GA 설립을 목표로 제판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한화생명 노조는 GA 설립에 반발하며 지난달 29일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기한은 22일까지로 잠정 결정했지만,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시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자회사형 GA로 가는 조건이 다 나온 것이 아닌 상황"이라면서 "단체협약 38조에 따르면 '안 갈 권리'가 있다. 이직에 대한 선택권을 줘야 하는데 주지 않고 있어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생명(085620)도 제판분리에 따른 노사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을 우려하며 제판분리를 반대하고 나섰다. 임금인상과 복리후생 개선 등도 요구 사항으로 사측과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시 파업도 불사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해 말 전속판매채널을 분리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내달 최종 개편을 목표로 전속설계사 3300명을 자회사형 GA로 이동시킬 방침이다.
보험사들이 이 같은 진통을 겪으면서까지 제판분리에 나선 건 급성장하는 GA 시장에 대응해 판매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제판분리를 통해 상품개발에 보다 집중할 수 있으며, 추후 종합금융상품 판매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사업비 절감 등으로 인한 비용 효율화도 기대 요소로 꼽힌다. 현재 신한생명, 농협생명, 푸르덴셜생명 KB손해보험,
현대해상(001450), 하나손해보험 등 여러 보험사들이 자회사형 GA 역량을 강화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가 제판분리를 시행하면 새로운 부서 신설 등에 눈치를 덜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면서 "제판분리는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처음 시도하는 보험사들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다만 제판분리로 설계사들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떨어질 수는 있다"면서 "회사 차원에서는 판매에 집중한다고 내세워도 내부 직원 입장에서 당장 동기부여 요소는 적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화생명노동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1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화생명 본사에서 '물적분할 저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한화생명노동조합
권유승 기자 k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