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협박으로 얻은 이익이 5억원 이상이면 가중처벌하는 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A씨가 낸 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헌 소원 사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폭행이나 협박을 사용해 타인에게 공포심을 야기하고, 그에 따른 타인의 하자 있는 의사에 기초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사적 자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허용하게 되면, 피공갈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의사결정의 자유, 즉 억압이나 강제되지 아니한 재산 처분행위의 자유가 박탈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A씨는 B사에 자동차 에어컨 부품을 납품했고, B사는 A사 등이 보낸 부품으로 공조장치를 만들어 완성차 회사에 공급했다. 완성차 회사는 생산 효율성을 위해 부품 재고를 1~2일치만 쌓아두기로 했고, 대체 부품이 없어 생산 라인이 멈추면 협력업체가 도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후 A씨는 2015~2016년 130억원에 부품 공장을 매수할 곳을 찾지 못하자, 부품 공급 중단을 무기 삼아 1300억원에 인수하라고 B사에 요구했다. 그는 겁 먹은 B사 등으로부터 사업양수도대금 명목으로 합계 1200억원을 갈취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9년,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8년 자동차 내장재를 공급받던 피해 회사들에게 각 19억원과 17억원을 지급하지 않으면 개별계약을 맺지 않겠다고 협박해 비슷한 금액을 받아 챙긴 혐의로도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공갈 등으로 얻은 이익이 5억원 이상일 때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는 구 특경법 3조와 관련 형법 조항 등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쟁점은 해당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는지, 해당 조항이 이득액을 기준으로 가중처벌 한다는 점에서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관련 조항이 모두 합헌이라고 결론 냈다. 우선 특경법상 업무상 배임이나 사기죄에 관한 '이득액' 부분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2015년과 2016년 헌재 결정을 근거로 들었다. 관련 범죄를 처벌하는 형법 350조 1항도 의미가 다르지 않다고 봤다.
책임과 형벌 간 비례 원칙에 대해서도 "공갈 행위에 대해 사전 억지력을 갖기 위해서는 일반 예방적 효과를 갖는 형벌에 의하는 것이 다른 제재 수단에 의하는 것보다 실효성이 있고,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행정적 제재 등이 형사처벌만큼 실효적인 수단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부당이득죄와 공갈죄는 행위 태양이 서로 달라 별도로 부당이득죄가 존재한다고 해서 지나친 형사제재라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또 "특정경제범죄법은 경제규모의 확대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법정형이 한 차례 현실화됐다"며 "구체적 사안에 따라 작량감경하여 집행유예도 선고될 수 있는 점, 공갈죄는 재산범죄이므로 이득액이 불법성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는 점, 이득액에 따른 단계적 가중처벌을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일반예방 및 법적 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고, 법원의 양형편차를 줄여 사법에 대한 신뢰를 제고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전경. 사진/헌재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