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글로벌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도전에 나선 가운데 당장
삼성전자(005930)·대만 TSMC의 현 양강 구도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최근 미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의지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해온 인텔의 저력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24일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200억달러(약 22조66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팹 구축 선언은 미국·유럽을 발판 삼아 최근 후발주자의 추격을 허용한 부진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다. 그간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점유율을 독식하는 등 세계 시장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최근 점유율·주가의 잇따른 하락과 함께 7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미세공정 전환에서 삼성전자와 TSMC에 밀리며 위기론이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인텔이 파운드리를 선택한 것은 기존 자체적으로 설계한 반도체 생산 외에 구글·퀄컴 등 자국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위탁 물량을 넘겨받아 향후 새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일종의 미국 기업간 단결 노선 구축으로 이번에 인텔이 자국 기업인 IBM·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 계획을 함께 밝힌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TSMC가 이미 대대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등 현재 파운드리 시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겔싱어 CEO도 "2025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1000억달러(약 113조33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파운드리 고객을 위한 위탁 생산 역량을 제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번 인텔의 선전포고에도 업계는 삼성전자와 TSMC가 잡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 구도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1위 TSMC(56%)와 2위 삼성전자(18%)의 점유율 합계는 84%에 달한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현재 인텔의 미세공정 기술력이 삼성전자와 TSMC보다 뒤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 두 업체가 앞으로 파운드리 관련 최첨단 사업을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현재 미세공정 기술력에서 삼성·TSMC이 더 앞서고 있어 인텔이 당장 공장을 짓는다고 영향을 줄 수는 없다"며 "기술력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이번 공장 신설이 파운드리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나스닥 마켓사이트에 나타난 인텔 로고. 사진/AP·뉴시스
다만 올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반도체 자국 생산 강조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라며 반도체 칩 공급 실태에 대해 검토를 지시했다. 현 글로벌 시장 구도에 매스를 댈 것을 시사한 것으로 아시아에 내준 반도체 패권을 되찾아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몇년간 주춤했으나 인텔은 여전히 매출액 기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다. 1968년 창립 이후 2016년까지 세계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을 정도로 기술력과 저력을 갖췄다. 자국의 반도체 산업 강화에 매달리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경험 있는 인텔의 존재는 중요하다. 이번 발표에서도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와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이 직접 참석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텔의 제조능력이 뒤처졌다고는 하나 그간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서 세계를 주름 잡은 노하우가 있기에 아주 무시할 수만은 없다"며 "이번 발표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공고히 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에 보내는 인텔의 일종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과 정부의 공조는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최근 인텔 등 미국 반도체 주요 기업은 의회에 자국 반도체 생산 기업을 위한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요구하고 나섰고 정부도 전향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반도체 대표기업들의 정부를 향한 지원 요구 목소리가 커졌다"며 "기존에 외주를 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 인텔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 자체 생산 기술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