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모른채 11년간 치료감호…발달장애인,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

"정신과 치료 대상 아닌 발달장애인 치료감호는 중대한 차별행위...마땅한 기준도 없어"

입력 : 2021-03-30 오후 4:47:44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선고받은 형기의 8배를 치료감호소에서 보낸 발달장애인들이 30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이날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기를 마치고도 치료감호소에 장기간 수용된 황모씨 등 2명이 국가배상청구와 장애인차별구제소송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치료감호는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격리하는 기능만 하게 된다"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중대한 차별행위"라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현행법상 치료감호 대상은 특수 교육과 치료가 필요한 범죄자인데, 발달장애인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강제 치료와 구금으로 장애인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적장애인 황모씨는 성범죄로 지난 2009년 9월 징역 1년 6개월에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황씨는 그로부터 11년 5개월 뒤인 지난 1월 풀려났다. 치료감호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직후 가종료됐다.
 
함께 소송을 낸 자폐성 장애인 이씨는 재산범죄로 지난 2019년 10월 징역 1년 6개월에 병과해 치료감호를 선고 받았다. 그는 형기가 만료된 지금도 치료감호소에 수용돼 있다.
 
대리인단은 황씨가 11년 넘게 치료감호소에 수용된 이유로 상한 15년 외에 별다른 기준이 없는 치료감호 기간을 꼽는다. 치료감호 기간은 선고 때 정해지지 않는다.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6개월마다 종료 여부를 정하는 '행정구금' 성격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현재 운영되는 치료감호 심의위원회의 종료심사가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치료 필요성 유무를 심사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는 치료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이 보편적 상식"이라고 말했다.
 
원고 대리인단에 따르면, 유일한 치료감호소인 공주치료감호소 내 지적장애인은 지난 1월 기준 전체 수용자 1002명 중 88명이다.
 
대리인단은 치료감호소가 일반 정신병원보다 적은 인력으로 운영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정신겅간복지법시행규칙에 따라 정신과전문의는 입원환자 60명당 1명을 둬야 하지만, 치료감호소는 의사 1명이 약 100명을 담당하고 있다. 간호사는 환자 13명당 1인 기준과 비슷한 12명당 1인이지만, 계호와 환자 이송 등 감호 인력으로 활용된다. 강당형 단일 병동에 환자 수십명이 수용돼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원고 측은 무엇보다 매월 특정일에 평균 253건을 살피는 치료감호심의위원회 심사가 제대로 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치료감호 요건은 '치료 가능성'인데, 애초 원고에게 치료 가능성이 없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대리인단은 "황씨의 성인지 문제는 치료 관점이 아니라 원고의 지적장애 유형에 맞추어 성교육과 상담을 통한 세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의료진이 황씨에 대해 '치료감호 종료' 의견을 냈고, 가족의 보호 아래 거주지 의료기관에 다닐 수 있었지만 10여년간 심사에서 탈락했다.
 
소장에는 국가인권위에 차별진정을 제기한 지 2주만에 치료감호 가종료가 결정됐는데, 그간 제출한 종료 신청서와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기재됐다. 대리인단은 이 때문에 현재 치료감호중인 이씨 역시 재범 위험성과 치료 필요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장기간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황씨 등의 대리인단은 소장에서 "법무부에서는 치료감호제도를 운영하며 치료감호를 종료할 수 있는 '치료의 필요성'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왔다"며 "장애인들이 원시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치료의 필요성 판단 기준을 설정하고, 장애인인 원고에 대해 기준 미달이라며 재심사에서 계속 탈락시켜왔던 것이다. 이는 지적정신장애인인 원고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적었다.
 
황씨와 이씨가 청구한 배상금은 각각 3억6500여만원과 1000만원이다. 황씨는 징역 기간을 초과한 치료감호 기간의 일실이익과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보태 청구했다. 이씨는 정신적 손해 배상액을 우선 청구했다. 대리인단은 이씨의 경우 본안청구와 별도로 다른 정신질환자와의 분리수용, 자폐성 장애 특성에 맞는 치료 시행 등 임시조치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원고 대리인단이 30일 오후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형기의 8배가 넘는 11년간의 치료감호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및 장애인 차별구제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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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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