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정부가 미국·중국 반도체 패권 경쟁이라는 당면 과제에 봉착한 국내 반도체 산업 살리기에 뒤늦게 나섰다. 업계 현실에 맞는 근본 대책 마련만이 K반도체를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6월 내 'K반도체 벨트 전략'을 발표할 전망이다. 용인 클러스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특화단지 등과 같은 클러스터 조성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대책 마련의 배경에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및 IT산업 전반의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와 미중 반도체 주도권 경쟁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 2013년부터 수출비중 1위로 전체 산업 수출의 19.4%를 담당하는 반도체 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민관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이유다.
이전부터 국가 차원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쏟아냈던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의지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을 당장 내놓지 않은 상황이고 또 그간 이렇다 할 개선책이 없었던 전례를 생각하면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주인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뀐 미국 행정부만 해도 500억달러(약 55조8350억원)를 쏟아붓는 반도체 투자 계획을 선언했고 미국 의회는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메모리·파운드리 업체의 관세를 면제하기로 했고 유럽연합(EU)은 반도체 기업에 투자액의 20~40%를 보조금으로 주는 정책을 마련했다.
문재인(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화상회의에 글로벌 기업들을 모아놓고 자국 반도체 산업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너도나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화상회의가 열린지 이틀 만인 14일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TSMC가 중국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업체인 파이티움으로부터 신규 주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TSMC와 함께 이번 회의에 참석했던
삼성전자(005930)도 당장 바이든 정부에 전달할 '당근'을 고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번에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도 삼성과 같이 타국의 압박을 받는 국내 반도체 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업계는 좀 더 빠르고 산업 상황에 맞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지난 9일 정부에 △연구개발(R&D) 및 제조시설 투자비용의 50%까지 세액공제 확대 △반도체 제조시설 신·증설시 각종 인·허가 및 전력·용수·폐수처리시설 등 인프라 지원 △원천기술개발형 인력양성 사업의 조속한 추진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신설 및 정원 확대 등을 요청했다.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반도체산업 지원프로그램 이행을 위해 '반도체산업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기업을 화상회의 테이블까지 부른 미국 등과 비교해 정부의 반도체 산업 대응 속도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며 "당장 세액공제와 보조금 수치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반도체 기업들을 근본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