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팬데믹 뚫는 불고기디스코 ‘한국적 해학’

올해 2월 EP ‘DISCOVID’…“좋은 날 돌아올 겁니다”
지난해 SXSW 무산됐으나 “음악적 영감으로 활용”

입력 : 2021-04-21 오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벽장 가득한 CD의 도열만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고 있었다.
 
11일 오후 3,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의 공연장 스트레인지프룻. 빨간 체크무늬의 재킷을 맞춰 입고 잔뜩 악기를 이고 온 다섯 청춘은 고뇌가 깊어 보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공연 없는 일요일이 된지 오래다. 주중과 토요일 여는 스트레인지프룻은 이미 폐업하거나 영업을 중단한 다른 홍대 공연장에 비해선 그나마 나은 상황. 이날 이곳에서 만난 불고기디스코 다섯 멤버, 이현송(보컬), 김동현(기타), 김형균(드럼), 이준규(베이스), 허정욱(엔지니어)일일 확진자수에 따라 당장 다음 주 공연조차 어떻게 될지 모른다객석-무대의 경계가 거의 없는 내추럴한 공연 맛이 그립다고 입을 모았다.
 
물을 주지 못한 식물처럼 양분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불고기디스코 김형균(왼쪽부터) 이현송, 허정욱, 김동현, 이준규.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인디스땅스
 
2019년 결성된 밴드는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적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가 무산되면서 첫 해외 공연의 꿈을 미뤄야 했다. 비행기 티켓 환불 뒤 떠난 강화도행은 전화위복의 계기. 기타와 베이스 10대를 포함 드럼 셋트, 앰프, 촬영 장비까지 총동원하는 송 캠프를 떠났다.
 
좌절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목장 같은 곳도 알아봤어요다 같이 코 골며 자고아침을 맞고, 노을을 보며 깊은 내면을 공유한 셈이죠. 미국이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음악 찐하게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하하”(이현송)
 
디스코, 펑크(funk), 록을 뒤섞은 복고풍 음악에 코믹한 이미지는 이들의 장기다. 올해 2월 발표한 EP ‘DISCOVID’에서도 음악과 춤이 끊긴 코로나 시대를 해학과 익살로 타개한다.
 
불고기디스코.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인디스땅스
 
세 곡 중 앨범을 여는 첫 곡 김칫국이 압권. 투 기타의 펑키한 스트로크는 흡사 시뻘건 고추가루가 휘날리듯 현란하다. 디스코리듬에 올라타 난장이 시작된다. 4박자를 정확히 찍는 킥드럼과 엇박으로 서걱거리는 하이햇, 4개현을 꿈틀거리며 생동하는 베이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춤이 들어간다~’
 
중반 네오소울과 힙합이 일렁이는 슬로우로 곡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막판 기타속주는 빛의 속도로 불을 뿜는다.
 
“SXSW행 무산 때 우리 김칫국 제대로 마셨구나싶었습니다. 그래도 멤버들과 밝은 미래를 믿고 염원해보기로 했습니다. 김칫국 계속 들이키다 보면 떡 받는 날 오지 않겠어요?”(김형균)
 
리어카에 배추를 싣고 달리는 김칫국 뮤직비디오. 사진/유튜브·포크라노스
 
리어카에 배추 더미를 산처럼 쌓고 달리는 뮤직비디오는 한 편의 코미디다. 트럭에서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45도 각도로 치켜든 기타, 행사장 풍선처럼 휘날리듯 춤추는 파란 방역복의 마스크맨들. 해학과 위트를 절여낸 영상 밑에는 음악이 매콤하다’, 기타 맛집이라는 댓글놀이가 김장철처럼 한창이다.
 
다른 수록곡 숨타령에서는 레게리듬을 한국 전통음악인 타령의 장단 형식으로 색다르게 풀어낸다. 묵은지처럼 구수한 전통 5음계는 숨좀 쉬고 삽시다란 가사를 실어 나르며 어깨춤을 들썩이게 한다. 펑키한 리듬에 괜찮은 날 올 것이라 노래하는 ‘Alright’까지 앨범은 웃음과 춤이 멈춘 시대에 역설의 에너지로 다가온다.
 
불고기디스코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는 아니다. 칵스 출신인 이현송을 필두로 향니의 이준규, 블락스의 김형균, 댐선의 김동현 등 멤버들은 이미 인디 신에서 잔뼈가 굵다. 엔지니어를 담당하는 허정욱이 마지막으로 합류하며 지금의 진영이 갖춰졌다. 록과 디스코를 근간으로 같은 음악을 해보자는 다짐을 팀명에 새겼다.
 
지금은 장르 믹스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때려 부수다가 디스코로 전환되는 신박한 음악도 나올 테니 기대해주십쇼.”(이현송, 김동현) “언양식, 뚝불, 불백처럼 다양하게 요리되는 불고기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이준규)
 
불고기디스코 이현송.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인디스땅스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대의 디스인 이번 앨범이 청자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인식되면 좋을지 물었다.
 
강원도 고성을 간 적이 있어요. 정치외교적으로 난리통인데 금강산 표지판이 보이는 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불안정, 안정이 공존하는 동네에 내가 있구나, 생각도 들고. 매일 공연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우리의 지금과 유사하다고 봐요.”(김형균)
 
김동현이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저는 휴양지나 관광지보다는 디스코 무드가 잘 어울리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어두운 분위기에서 음악 들을 수 있는 소규모 바 같은 곳.
 
불고기디스코 김형균(왼쪽부터), 이준규, 김동현.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인디스땅스
 
듣고 있던 이준규가 한편의 음악 다큐로 마침표를 찍는다.
 
일단 김칫국이 나올 때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거지. ‘쿵짝쿵짝’. 설레짜릿하잖아렌트카도 알아보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하고다음날 비가와요. 2번곡 숨타령마음대로 안 되니 한을 풀고... 마지막 ‘Alright'. 날씨가 개서 맑은 기운으로 집에 가는 거야.”(이준규)
 
"벌써 집에?"(이현송) "그래도 하늘이 맑으니 기분은 좋은게지."(이준규) "하하하."(모두들)
 
불고기디스코.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인디스땅스
 
이번 밴드유랑은 코로나19로 대중음악 공연장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밴드신과 공연장을 조명하고자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특별 기획한 인터뷰입니다. 지니뮤직 매거진 경기뮤직’ 카테고리에 연재되는 코너에서는 재편집한 글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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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