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 할아버지가 말하는 꼬붕과 작당이 무슨 뜻이야."
언론계에 종사한지 20년이 넘은 기자에게 초등학생 딸이 티비 뉴스를 보다 물었다. 그래도 나름 정치부장이라는 직책으로 현실 정치의 흐름과 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자로서 초등학생 딸의 질문은 마치 고3때 복잡한 미적분 문제보다도 어렵게 느껴졌다.
그 할아버지가 말하는 단어의 뜻에 대해 바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다 단어의 뜻만 간단히 일러주고는 이내 곧 허탈감에 빠졌다. 후배 기자들의 기사 데스킹을 보면서는 '원래 정치 바닥이 그렇지 뭐'라는 생각에 그냥 지나쳤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꼬붕과 작당 물음은 현역 정치부장으로서 꽤나 답하기 난감하면서도 상세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 고차원적 문제였다.
뭐 생각을 정리하자면 꼬붕들이 작당하는 일이 정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구나 이는 제1야당의 대표를 지낸 정치 원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의한 것이다. 한 평생 정치에 몸담은 그가 내린 정의에 고작 20년이 넘는 기자 경력으로서는 감히 토를 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안따까움과 실망감과 허무한 감정 모두 오롯이 나의 몫이다. 또 나 같은 일반 국민들의 몫이다.
아무리 정치적 수사라 하더라도 시정잡배들이 쓸 만한 단어들이 연일 보도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실 국민의힘은 지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LH발 부동산 투기와 코로나 여파이긴 하지만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 등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국민의힘이 잘해서 선거에서 승리한 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의 실책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최악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좁은 선택지에서 남아 있던 문항이 국민의힘이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선거 이후의 정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다양한 정치 활동에 있어서 한결 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야 하는 당이 국민의힘이다.
물론 국민의힘이 전직 대표의 잇따른 돌발 발언의 책임을 다 져야 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대응 과정에서 같은 단어로 마치 조직폭력배가 상대 진영에게 보복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비록 막말이 쏟어지더라도 점잖은 표현으로 언어의 품격을 지켜가며 대응을 했다면, 오히려 김 전 위원장의 허접한 정치적 수준이 더 돋보였을 수 있다.
제3지대에서 정치적 입지 구축을 도모하는 김 전 위원장으로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정치권에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저질스런 단어를 써 가며 상대를 비판하는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기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한 애정이랄까. 뜬금없는 백조와 오리 등장이 또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상황도 나왔다. 김 전 위원장은 백조가 오리밭에 가면 오리가 돼 버린다며 국민의힘의 격을 낮추고, 윤 전 총장을 수준 높은 정치인으로 묘사했다. 오리밭에서 오리들의 수장 노릇을 했던 이가 그 오리밭에서 나와서 지지율이 높은 윤석열을 보니 무한한 사랑을 느낀 것일까.
질 낮은 정치 언어는 정치 혐오만 부추킬 뿐이다. 더구나 유력 정치인들의 말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을 넘어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기도 한다. 언제쯤 품격있는 정치 언어로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뉴스를 접할 수 있을까.
권대경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