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문식·박한나 기자] 당정의 암호화폐 규제 방침이 제2의 부동산 투기 사태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이 사태의 본질을 보기 보다는 시장 과열 현상에만 치우쳐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서다. 즉 청년들이 왜 암호화폐를 쫓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분석없이 단순하게 시장의 과열 양상만 우려하며 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내년부터 기타소득의 세목으로 암호화폐 차익의 20%를 세금으로 걷는 내용도 투자자 보호 등 제도적 장치 마련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26일 정치권과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6시 기준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퇴 촉구 국민청원에 무려 13만명이 넘게 동의했다. 특히 여당 인사들 상당수가 은 위원장의 발언이 경솔했다며 정부의 규제보다 제도적 장치 마련에 무게를 실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암호화폐가 투기고 가상자산의 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기획재정부는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세금을 매긴다는 건 실체가 있다는 것인데 이런 부분에서 국민들이 신뢰를 갖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어 “또 하나의 가상세계에서 위대한 미래신산업이 나올 수 있고 그 안에서 결국은 결국은 주로 움직이는 게 토큰”이라며 “그게 결국 가상화폐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의 산업적인 측면도 함께 보고 투기를 막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정부는 내년부터는 암호화폐 거래로 얻은 차익의 20%를 세금으로 거둬들인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세법개정으로 암호화폐 매매차익이 로또복권 당첨금과 같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은 위원장은 암호화폐는 인정할 수 없고 투자자들을 정부가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며 “그런데 이 와중에 정부는 내년부터 암호화폐 수익에 대한 과세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이런 황당한 상황이 어딨나”라고 지적했다. 또 “할 일은 하지 않고 국민을 가르치려는 전형적인 관료적 태도이자 세상 물정 모르는 낡은 인식”이라며 “세상이 달라졌으면 당연히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암호화폐를 인정할 수 없는 가상자산으로 보는 위원장과 금융당국의 태도부터 잘못됐다”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무엇이 문제인가 확인부터 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금융위원장의 경솔한 발언에 상처받은 청년들께 죄송의 말씀 올린다”고 적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 역시 “이제 금피아 기득권의 어깃장 놓기 그만해야 한다”며 “유동성이 코인 시장에 몰리면 몰릴수록 은행권의 수익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기에 금융기득권, 금피아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를 할 것인데 코인 시장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쪽에 무게를 두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상세한 언급은 자제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금융감독원 연수원으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은 금융위원장의 암호화폐 시장 발언에 대해 “한 번 정도 과열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은 위원장의 발언을 과열 진정용으로 평가했다. 김 후보자는 “암호화폐 문제(는)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사안별도 대처를 하는 잠재적 대권주자들도 암호화폐의 규제냐 제도화냐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춰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취업과 경제문제 등에서 좌절에 빠진 청년들로부터의 후폭풍이 우려되는 탓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지금의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 말에 책임을 지시고 자진 사퇴하라”며 “이미 선진국들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가”라고 지적했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암호화폐와 관련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며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국회(임시회) 제1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조문식·박한나 기자 journalma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