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용의 등에 오를 자

입력 : 2021-10-20 오전 6:00:00
대선을 앞두고 미신이나 무속과 관련한 화제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선거에 나선 후보가 유명 역술가의 사주나 점괘 등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는 선거철이면 반복되는 풍경이라지만, 입길에 오르는 사례가 다양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주요 이슈로 난데없이 손바닥 임금 왕자에서부터 항문침이나 천공스승 논란 등이 대선판을 말아먹고 있다. 정치적 논쟁이나 정책적 대안 제시가 필요한 안건이 이렇게나 없을까 싶다.
 
역대 대선에선 군부독재에 대항해 일어난 시민들이 키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컸다. 이후 문민정부를 비롯해 여야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의정부 등에서는 사회문제 회복이라는 시대정신을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이 바라보는 이번 대선 후보들의 행보와 말실수 등까지 더하면, 도무지 눈을 어디에 둬야 하나 싶다.
 
전통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쓰이는 잠룡이라는 말로 분위기를 잠시 환기해 보자. 한자문화권에서 예로부터 용의 신비한 기운을 숭배하는 경향에 기초한 이런 상징은 미신이라기보다는 고전의 측면에서 접근해 볼 만하다.
 
잠룡은 선거에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표현으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교 경전인 주역에도 나온다. 잠룡은 연못이나 늪 등에 숨어 아직 승천하지 않은 용을 뜻한다. 높은 자리를 피해 의도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거나, 출세하기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 등을 빗대 표현할 때 쓰인다.
 
용은 여러 동물의 장점을 두루 섞어 만들어낸 것이 특징이다. 열두 띠(십이지) 중 유일한 상상 속 동물이기도 하다. 용은 이처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동물이기에 왕의 상징물로 쓰였다. 조선시대 임금이 시무복으로 입은 곤룡포를 비롯해 임금의 얼굴은 용안, 임금의 지위는 용위라 했다. 임금이 흘리는 눈물은 용루라 지칭했다.
 
용과 관련한 속담도 다양해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에는 빈천한 환경에서도 때로 걸출한 인물이 난다는 희망을 담았다. 중국 황하 상류에 있는 용문협곡에서는 잉어가 모여 급류를 타고 뛰어오르는데, 급류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가 용이 된다는 전설은 오늘날 등용문이라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잠룡은 이처럼 역사적·제의적 상징을 두루 담은 단어다. 대선을 앞둔 정가에서 이런 큰 이름을 받은 이들의 행동이 미신 수준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기까지 한 이유다. 점괘로 당선을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옛 관료들이 재임 중 하지 말아야 할 4가지와 거절해야 할 3가지(사불삼거)를 불문율처럼 삼았던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면 어떨까. 정치인의 청렴도를 어느 수준에서 바라볼 것인가는 차치하고라도, 현재 후보로 나선 주요 주자들 모두 대통령이라는 공직자 자리를 향한 절제의 삶을 살아가는 획을 생각할 때다.
 
대선이라는 엄중하고 중차대한 일정을 앞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는 나라에서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들의 논쟁거리가 고작 주술이니 무속이니 하는 말로 이어지는 상황은 믿기 힘들 지경이다. 선거일은 다가오는데 국민들은 마땅히 찍을 후보가 없다는 볼멘소리와 탄식만 쏟아내고 있다. 대중이 바라보는 상식에 부합하는 인물이 없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러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차선도 아닌 최악의 후보를 뽑았다는 허탈한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질까 걱정이다. 진정 용의 등에 오를 주자라면 공직자의 자세를 먼저 살피자. 나라의 안정에 필요한 정책과 콘텐츠를 앞세워 승부할 때다.
 
조문식 국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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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