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8000만원을 상회하던 비트코인 가격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사이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비트코인 랠리가 일단락하며 마침표를 찍는 모습이다. 주식과 부동산 광풍 속에서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암호화폐들은 2030 청년층에게 '마지막 사다리'로 여겨졌다. 이들 중 일부는 소위 '영끌'과 레버리지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참혹한 결말을 맞고 말았다. 가격 급락에 따른 손해는 물론이고, 사기성이 짙은 암호화폐에 자산을 잃은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에 정부는 가상자산 시장을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했지만 가상자산에 대한 시각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 보호는 여전히 요원하다. 그 사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배만 부르고 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 30대 직장인 A씨는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투자 초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자산이 불어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점을 찍고 속절없이 곤두박질 치는 시세에 A씨는 망연자실 할 뿐이었다. 결국 그는 결혼도 포기했다. 암호화폐로 일확천금을 꿈꿨지만 돈도 잃고 사랑도 잃었다.
암호화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상승 가도를 달렸다. 지난해 7월만 해도 1000만원 안팎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같은 해 11월 2000만원을 돌파하더니 연말부터는 쾌속 질주를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이 1억원을 상회할 것이란 장미빛 전망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지난 4월 중순 8000만원을 상회하며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3일 오후 3시 현재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가격은 4500만원선을 횡보 중이다.
업계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시중에 넘치는 유동성이 비트코인의 가격도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내년부터 시행될 암호화폐 과세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것은 일론 머스크의 트윗이었다. '도지 파더'를 자청한 그는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도지코인과 관련된 발언을 쏟아냈고 그의 말 한마디가 글로벌 비트코인 시세를 좌우했다.
연일 고공행진을 하는 암호화폐 가격에 현혹된 청년층의 투자가 이어졌다. 중장년층의 투자도 적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점, 스마트폰을 통해 24시간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젊은 투자자들을 유인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실에 따르면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1분기 신규 가입자는 249만5289명으로, 이 중 20대(81만6039명)와 30대(76만8775명)가 전체의 63.5%를 차지했다. 이 기간 예치금 증가율은 20대가 154.7%(346억→881억원), 30대가 126.7%(846억→1919억원)에 달했다.
이들에게 지난 한 달은 악몽과 같았다. 아래로만 곤두박질치는 암호화폐 시세 차트는 빚투까지 불사한 이들의 공포를 극대화시켰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젊은 투자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암호화폐에 투자했다 현재 손실을 기록 중이라는 한 직장인은 "하락장 초기만 해도 '한강뷰를 보느냐, 한강으로 가느냐'는 농담이라도 나눴지만 요즘은 정신건강을 위해 시세조차 확인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존버(가격이 오를 때까지 매도하지 않고 버티는 것)를 해야 할지 지금이라도 털고 끝내야 할지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 암호화폐 거래소들만 재미를 봤다. 거래소는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라 암호화폐 가격 등락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급락장 속에서도 패닉셀이 나타나면 거래량이 증가한 탓에 수수료 수입은 더 커진다. 국내 1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경우 원화 마켓은 0.05%, 비트코인·테더 마켓은 0.25%의 수수료를 수취한다. 빗썸은 거래 건 당 0.04~0.25%의 수수료를 적용한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이 정점을 향해가던 지난 4월 업비트의 거래 대금은 22조원을 기록했다.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의 전체 거래 대금 14조4900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로, 최소 수수료율을 적용한다 가정해도 하루에만 110억원의 수수료 매출을 올린 셈이다.
이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는 지난해 86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9년(423억원) 대비 2배가량 증가한 규모다. 매출은 1402억원에서 1767억원으로 26% 늘었다. 두나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035720)는 지난 1분기 약 1500억원의 지분법 이익을 얻기도 했다. 빗썸을 운영하는 빗썸코리아는 지난 1분기에만 2225억원 이상의 이익을 남겼다. 지난해 1분기 228억원보다 10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이 기간 빗썸코리아의 매출은 448억 4000만원에서 2502억원으로 확대됐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