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암호화폐(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의 집중 단속에도 일시적인 가격급등으로 인한 암호화폐 시세 올리기, 허위 공시 등 문제가 잇따르면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현재는 개별 거래소가 서로 다른 기준으로 최소한의 검증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불법행위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개별 거래소들 또한 무책임한 상장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잦아 암호화폐 거래소를 종합 검증하는 금융당국의 촘촘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아로와나토큰은 불법행위로 차익을 실현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됐다. 이 코인은
한글과컴퓨터(030520) 계열사가 참여해 금 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며 내놓은 암호화폐로, 지난달 20일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에 상장하자마자 상장가(50원) 대비 1000배 넘게 뛴 5만원에 거래됐다가 현재는 고점 대비 90%까지 가격이 급락했다. 이를 두고 한컴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코인가격을 급등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문제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서 부재, 대표의 블록체인과 부관한 업무 이력 소유 등이 논란이 됐는데도 사실상 국내에서 이를 규제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코인 자체가 법적 제재수단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서다. 무엇보다 이 토큰을 발행한 회사는 싱가포르에 법인이 있어 현지 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야 해 더욱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페이퍼컴퍼니 설립과 투자를 통해 시세조종을 한 혐의가 적발될 시 주식 상장에선 처벌이 가능하지만 암호화폐는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한편 아로와나토큰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3일 한글과컴퓨터그룹은 아로와나토큰을 활용하는 금거래 서비스의 일부를 일정보다 서둘러 공개했다.
과거 호재를 재탕하거나 알고보니 허위공시로 드러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머니2’가 있다. 고머니2는 블록체인 개발사 애니멀고가 발행한 코인으로, 업비트뿐 아니라 빗썸과 코인원 등 다수 거래소에 상장했다. 업비트는 지난 3월16일 고머니2로부터 공시내용을 전달받아 5조원 규모의 초대형 북미펀드인 셀시우스네트워크 고머니2에 투자한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들이 공시의 근거가 빈약하다며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었고, 결국 업비트는 애니멀고가 허위공시를 올렸다며 고머니2 거래 지원을 종료했고 같은달 19일 상장폐지했다.
사진/아로와나테크 미디엄.
거래소 관계자가 직접 투자에 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최대주주 송치형 의장은 지난 2017년 회사 명의의 아이디를 만든 뒤 허위로 암호화폐를 사고팔아 주문량을 부풀렸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검찰이 즉각 항소해 2심이 진행중이다. 당시 법원은 아이디를 만들어 비트코인을 거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래소가 실제로 비트코인을 보유했는지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무죄 판결의 이유로 들었다. 빗썸의 실소유주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의장도 자사가 발행한 ‘BXA토큰’을 빗썸거래소에 상장시킨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으나 현재까지 검찰수사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 전 의장은 재산 상당 부분을 해외로 빼돌리는 등 국적세탁 의혹도 받고 있다.
중소거래소의 경우 시세조종, 허위공시, 문제를 비롯해 셀프 상장, 무더기 상장 사례가 더욱 빈번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오는 9월24일 발효되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의 가상자산 사업자 요건을 갖추기 위해 실명계좌 발급이 급한 일부 거래소들은 상장을 허가한 코인들을 대거 유의종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프로비트의 경우 최근 원화 시장 365개 코인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5개 코인을 거래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사업자 등록을 위해서 이른바 ‘불량 코인’을 걸러내는 작업이지만 업계에선 유망한 프로젝트 코인들까지 거래량이 단순히 낮다는 이유로 상폐를 당해 피해를 보고 있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거짓공시, 시세조종 자체는 불법이지만 암호화폐의 경우 재화로 인정되지 않아 실제 처벌까지 내리기 어렵다면서 정부 차원에서의 공통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암호화폐업계 한 관계자는 "코인 거래소들이 거래량 확보를 위해 코인 상장을 쉽게 허용했다가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뒤늦게 부실코인 솎아내기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형국"이라며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최종 책임자인 정부는 문제 발생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며 암호화폐와 관련한 관리감독 기준조차 정비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투명하게 상장하고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검증할 수 있는 기관이 부재해서 허위공시, 시세조종 등의 행위가 더 만연해지고 있는 것"이라며 "거래소나 공시플랫폼업체 쟁글과 같은 곳에서 코인 평가를 진행하지만 상장 기준도 거래소별로 제각각이고 코인 발행 재단 측이 정한 코인 가격, 분배 등을 거래소가 일일이 문제 삼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공통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