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통신사 얘길 시작해보죠. 어제 방통위에서 지난 2분기 주요통신사업자의 마케팅비가 얼마나 쓰였는지 발표했죠?
▲ 네. 어제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요 통신사업자가 제출한 '2010년 상반기 마케팅비 및 투자비 집행 실적'을 집계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017670),
KT(030200),
LG(003550) U플러스의 이동통신 부문 마케팅비는 총 3조1168억원으로 3사 매출액 합계 11조8547억원의 26.3%를 가입자 모집을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했다고 밝혔습니다.
방통위는 지난 5월 통신업체들의 과다한 마케팅 비용 경쟁을 줄이기 위해 유·무선 사업을 구분해 전체 매출액의 22% 이상을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한 바 있습니다.
방통위가 집계하는 마케팅 비용은 광고선전비용이 제외된 순수 가입자 모집 비용입니다.
- 그렇군요.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이 자율인가요? 타율인가요?
▲ 일단 겉모양새는 자율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의 요구에 사업자들이 들어주는 형태입니다. 만일 마케팅비가이드라인을 사업자끼리 협약을 맺으면 주요 사업자끼리 맺는 담합으로 해석이 가능해 공정거래 이슈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정부도 통신시장의 마케팅비가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이어진다는 판단하에 법적 근거도 없이 조금은 무리하게 해당 협약을 이끌어냈죠.
지난 5월 이석채 KT 회장이 관련 비공개 회의에서 마케팅비 축소 합의를 종용하는 최시중 위원장 등에게 ‘반시장적’이라며 반발했고, 이에 최 위원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등의 험악했던 당시 뒷얘기는 잘 알려져 있죠.
- 자료를 보면 KT의 무선 마케팅 비용이 비율 면에서 높은데 어떻게 된거죠? KT는 마케팅비가 많이 나갈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건가요?
▲ 무선, 즉 이동통신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말기 보조금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휴대폰을 제 값내고 사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이런 저런 보조금이 잔뜩 붙어서 소비자가 내는 돈은 원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이동통신사가 이 보조금을 지불하거든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휴대폰의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하는 삼성전자 같은 제조사도 보조금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휴대폰의 원래 가격이 의미도 없지만 제조사가 매긴 원래 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건데요. KT의 주력 스마트폰인 아이폰은 이 제조사 보조금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격이 100만원 가까이 하는 휴대폰을 약정으로 묶어 20만원대에 사면 나머지 부분을 KT가 다 메꾸는 거죠. KT는 지난 6개월 동안 이동통신 3사중 매출액 대비 마케팅비 지출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KT는 매출액 대비 평균 28.4%를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했습니다.
자료를 보시면 3사가 이른바 마케팅 전쟁 휴전 선언을 앞둔 5월에 가장 마케팅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SK텔레콤이 매출액 대비 29.5%의 비용을 쏟아부었고, KT는 이동통신분야에서 상반기에만 매출의 30.4%를 쏟아부었습니다. LG유플러스도 매출의 26.9%의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념하셔야 할 것은 비율보다 돈을 누가 더 많이 썼는가 입니다. 기본적으로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매출사이즈가 다른 두 경쟁사업자를 압도한다는 점입니다. 비율은 비슷할지 몰라도 액수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죠.
- SK텔레콤이 비율은 다소 낮지만 제일 많은 돈을 썼다는 얘기군요. 시장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질까요?
▲ 시장상황은 더 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SK텔레콤 임원과 식사를 하다가 물어봤습니다. “마케팅비 경쟁 안하실꺼냐고?” 그 임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SK텔레콤이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SK텔레콤은 먼저 마케팅비 경쟁에 나서지는 않을테지만 (경쟁사가) 도발하면 응징한다는 것인 내부 방침”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번달은 비수기의 영향으로 아무래도 소강기이겠지만 이동통신 시장이 격화되는 시점은 바로 애플의 아이폰4가 나오는 이달 말부터 입니다. 이석채 회장은 아직도 아이폰에는 보조금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거든요.
그렇다면 아이폰4가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의 가입자당 평균수익이 높은 가입자를 뺏어올 가능성이 많고, 대기 수요를 악착같이 빨아들이려면 KT 몫인 이통사 보조금에다 제조사 보조금까지 다 책임져야 합니다.
3세대 아이폰에서 얻은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아이폰4라는 호기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를 위해 마케팅비를 쏟아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SK텔레콤이 가만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미 도발하면 응징한다고까지 말했으니까 정부의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은 무용지물이 되는 거 아닌가요?
▲ 제가 볼땐 SK텔레콤도 즉각 KT의 도발에 즉시 마케팅비를 쏟아 붓겠지만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폰4에 대항할만한 휴대폰은 갤럭시S정도일 겁니다. 갤럭시S2가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거든요.
SK텔레콤 입장에서는 갤럭시S가 버텨줘야하는데, 아시겠지만 갤럭시S에게서 새제품 출시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바로 제조사 보조금. SK텔레콤은 삼성전자에게 이 제조사 보조금의 단위를 높이라고 요구할 겁니다. 안방시장에서 50%가 넘는 스마트폰 점유율을 지켜야하는 삼성전자로서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제조사 보조금 수위를 높일 겁니다.
현재는 기업고객에게만 제조사 보조금이 상당부분 풀리고 있지만, 아이폰4 출시와 함께 갤럭시S 제조사 보조금도 두배 가까이 높아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관계자를 만나보면 기업시장에 풀리는 제조사 보조금 수위가 너무 높아 남는게 없다는 푸념을 들을 수가 있거든요. 조만간 개인고객 시장에서도 갤럭시S를 아주 저렴한 가격이나 기업고객처럼 약정만 하시면 공짜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치열하군요. 하지만 얘기를 듣다보면 사업자에게 소모적인 마케팅비를 투자하는데 썼으면 좋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무색해질 것 같은데요? 방통위는 뭐라고 하나요?
▲ 어제 최영진 통신경쟁정책과장을 만나봤습니다. 최 과장은 바로 직전까지 통신사업자들에게 저승사자라 불리는 시장조사과장을 한데다, 이번에 통신경쟁정책과장을 맡아 투자하기 싫은 통신사업자들에게 투자를 종용하는 악역을 맡고 있어서 사업자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 공무원입니다.
최 과장은 각 사업자의 마케팅비 소진 비율이 지난 6월 줄어들었다는 점을 예로 들며, 아이폰4 등에 대한 대기수요도 있지만 정부의 마케팅비 가이드라인 정책이 어느 정도 먹혀 들었던 것 아니냐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동통신사들이 소모적인 마케팅비 싸움을 그칠지는 미지수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통신사업자의 마케팅 싸움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그럼 대체 왜그리 떠들썩하게 최시중위원장이랑 주요통신사업자 사장들을 모아놓고 싸인까지 했냐고 말이죠. 최과장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각 사업자들이 소모적인 비용 싸움을 하는데 지켜보고만 있으라는 거냐"고 반문하더군요. 알아봤더니 방통위 통신정책국의 역할이 일단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나머지는 방통위 이용자보호국에서 진행할 사항인데요. 이용자보호국은 조만간 통신사들이 가입자를 차별해 과도하게 마케팅 비용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금지행위 유형을 만들어 공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방통위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통신사업자들의 하등에 쓸모없는 가입자 뺏기 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