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점령군' 논란 불필요하다

입력 : 2021-07-06 오전 6:00:00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권 도전 출사표를 던지자마자 맹공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점령군'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이 지사는 1일 대선 출마 직후 경북 안동에 있는 항일시인 이육사 기념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체제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발언은 보수 언론을 통해 확대됐고, 야권 대선 주자들은 이 지사의 해당 발언을 향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야권 지지율 1위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그 수위가 높았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 세력의 유력 후보가 이어받았다"라고 이 지사를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단편만을 부각해 맥락을 무시하는 세력은 국민의 성취에 기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의 주장은 익숙한 구조를 보인다. 해방 이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 가운데 어느 한쪽을 비판하면 곧바로 반대를 긍정하는 구조다. 우리 진영 비판이 바로 상대 진영을 칭찬하는 전형적인 이념 색깔론이다. 미군을 점령군으로 비판하면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곧바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정치적 수사로 상대를 공격하는 의도가 있더라도 철 지난 색깔론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민망하다.
 
이 지사의 '점령군' 표현은 이미 역사적인 사실로 판명된 내용이다. 1945년 일본 패망 뒤 38선 이남에 진주한 미국 맥아더 사령부의 포고문을 보면 스스로를 '점령군'을 지칭하고 있다. 역사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2차세계대전 승전국 미국이 패전국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한반도 남쪽을 군사적으로 점령했다는 의미다. 윤 전 총장은 역사 왜곡이라며 이 지사를 비판했는데, 사실 역사 왜곡은 윤 전 총장 자신이 저지른 셈이다.
 
윤 전 총장의 비판은 대권 주자로서의 편협한 역사적 인식과 함께 한계를 드러냈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내건 '공정'은 사실상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지사도 강조하고 있는 '공정'이 자신의 '공정'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정책적인 경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갑자기 윤 전 총장은 색깔론을 들고나왔다. 국민을 편 가르고 어느 한쪽만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인지 궁금하다. 윤 전 총장은 '분열'이 아닌 '통합'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정치의 본질은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문장원 정치부 기자 moon334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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