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분세탁과 허영심, 좌충우돌 윤석열

입력 : 2021-08-04 오전 6:00:00
경기도 부천엔 족보전문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엔 어르신들은 물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집에 족보가 없어 집안 내력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다. 그런데 이곳에서 족보 열람을 신청하면 관장이 반드시 성명과 개인 연락처 등을 확인한다. 복사를 제한하는 건 물론 자료도 절대 대여해주지 않는다. 족보가 없는 사람들이 이곳 자료를 베껴 족보를 위조, 신분을 세탁할 수 있어서다.
 
족보 위조가 그렇게 많을까 싶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전주 최씨에서 분파됐다고 주장하는 완산 최씨에 대해선 족보를 위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전주 최씨 역대 대동보와 증보문헌비고 등 자료를 고증하면 완산 최씨가 전주 최씨에서 갈라졌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어서다. 각종 자료를 검증해보면 완산 최씨의 중시조로 알려진 '고려 말 최수강'이라는 인물은 실존 여부가 의심된다. 계유정난에 반대하다 사육신과 함께 죽은 백촌 김문기의 경우는 그 후손들이 경주 김씨 백촌공파냐 김녕 김씨 충의공파냐를 놓고서 대법원까지 가서 다툼을 벌였다.
 
족보 위조의 목적은 신분세탁과 허영심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본인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려는 심리다. 이런 맥락에서 족보 위조는 한 집안의 역사를 바꾸는 걸 넘어 역사 전체에 대한 왜곡이기도 하다.
 
잡학지식으로만 알던 족보 위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때문이다. 물론 윤 전 총장이 파평 윤씨 족보를 위조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일련의 행보를 보면 신분세탁과 허영심을 엿보여서다. 문재인정부에서 승승장구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까지 지낸 그가 정부를 비판하며 야당에 입당하는 과정은 반문정서를 자극해 정치인으로 변신하기 위한 전형적 신분세탁이다. 윤 전 총장은 본인이 특검수사를 벌여 구속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사면론에 공감한다는 언급까지 했다. 그것도 보수의 텃밭이자 박 전 대통령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를 찾아서 말이다.
 
최근 발언들이 논란을 촉발하는 건 사회경제 현안의 전문가를 자임한 허영심 탓이다. 주 52시간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주 120시간 노동'부터 '대구 아니면 민란', '건강한 페미니즘' 발언 등이 대표적 논란거리다. 심지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밀턴 프리드먼은 먹으면 사람이 병 걸려 죽는 거면 몰라도 부정식품이라면 없는 사람들은 그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햄버거 50전짜리도 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50전짜리 팔면서 위생이나 퀄리티를 5불짜리로 맞추면 그건 소비자한테 선택의 자유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의 이 발언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외면하고, '선택의 자유'만 강조해 "질 낮은 부정식품은 먹어도 된다"라는 의미로 해석돼 많은 비판을 받았다.
 
윤 전 총장은 급작스레 올라간 지지율만 믿고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철학과 국민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상태에서 '떠밀리듯' 등판한 셈이다. 야권 후보로 나서기 위한 신분세탁, 검사 출신으로서 사회경제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허영심이 합쳐졌으니 늘 좌충우돌이다. 이른바 '윤석열 논란'은 윤 전 총장 본인의 해프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국 정치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윤 전 총장은 숙고하고 자중하시라.
 
최병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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