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집회 참가자에게 교통을 방해하려는 직접적인 행위가 없었는데도 이를 유죄로 인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에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집회에 단순 참가한 것으로 보일 뿐 집회의 신고 범위를 현저히 일탈하거나 조건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데에 가담해 교통방해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행위를 했다거나 일반교통방해죄의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죄책을 물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인 A씨는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가 지난 2015년 3월28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주최한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결의대회'에서 5000여명의 참가자와 함께 마포대교 방면 여의대로 전차로를 점거한 채 행진하는 등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이후 그해 5월6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관련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본회의가 진행되자 공동투쟁본부 회원 300여명과 함께 국회 입구 노상에서 서울 영등포경찰서장의 3차례에 걸친 해산 명령에도 집회를 진행하는 등 집시법 위반 혐의도 받았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영등포경찰서에서 방송 차량을 배치하고, 마이크를 이용해 집회 참가자들에게 도로 점거가 미신고 행진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수회에 걸쳐 진행했다"며 "피고인도 당시 경찰의 방송 차량에서 무언가 방송을 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2심은 일반교통방해 혐의만을 유죄로 판단해 1심을 깨고,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1심 선고 이후인 2018년 5월31일 집시법 조항 중 '국회의사당'에 관한 부분에 대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헌법불합치 결정에 의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언된 이 사건 법률 조항은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금지장소 집회 참가로 인한 집시법 위반의 점은 범죄로 되지 않는 때에 해당해 형사소송법에 따라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에는 일반교통방해죄, 공모공동정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2심판결을 뒤집었다.
이에 대해 "피고인에 대한 채증 사진으로는 집회에의 참가 경위나 관여 정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고, 달리 주도적으로 교통방해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집회가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이 없는 상태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됐던 점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이 집회에 참가하면서 신고 범위의 현저한 일탈이나 조건의 중대한 위반에 가담한다는 인식을 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여의대로는 왕복 10차로의 넓은 도로이고, 당시 50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외치는 구호나 집회 주최 측의 방송 등으로 인해 현장이 매우 소란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피고인의 진술만으로 교통방해 상황이나 경고 방송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 사전 신고 내용에 배치되는 행진을 하고 있다는 사정을 인식했을 것이란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