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과거 일본군에 끌려가 전범이 된 피해자들이 정부가 청구권 문제 해결을 하지 않는다며 위헌 확인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한국인 B·C급 전범과 유족들이 외교부를 상대로 낸 '한일협정' 3조의 분쟁해결 부작위 위헌 확인 소송을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31일 각하했다.
재판부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한일협정의 해석에 관한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청구인에게 한일협정 3조에 따른 분쟁 해결절차로 나아갈 작위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협정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고 해도 피청구인은 외교적 조치를 통해 작위의무를 이행했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일본은 2차대전 중인 1941년 12월 육군성에 포로정보국을 설치하고 이듬해부터 조선인을 포로감시원으로 강제 모집했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 포로감시원 규모는 약 3000명이다.
이들은 동남아 각국에 흩어진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 명령에 따라 연합군 포로를 감시했다.
강제 동원 조선인은 종전 이후 국제전범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인정돼 사형 또는 유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일본 스가모 형무소에서 출소한 조선인 전범들은 1955년 4월 '동진회'를 결성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생활권 확보와 국가보상 투쟁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이후 보상 책임을 부정했다. 1991년 도쿄 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국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도 냈지만 3심까지 전부 패소했다.
한국정부는 2004년 3월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관련 조사를 벌였다. 이후 한국인 B·C급 전범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됐다. 이번 위헌확인 소송 청구인 일부는 당시 유족으로서 위로금을 받았다.
2005년 공개된 한일협정 3조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돼 있다.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가 협정 3조를 통해 분쟁 해결을 해야 하는데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4년 10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쟁점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해 가진 배상 청구권이 한일협정 2조 1항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에 따라 소멸됐는지에 대한 해석상 분쟁을 협정 3조에 따라 해결하지 않는 부작위인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전범재판 처벌에 따른 피해가 한일협정과 관련 없고, 협정에 대한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일본에 관련 문제 해결을 요구해 부작위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제 징병 피해자가 B·C급 전범이 된 데 대해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은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B·C급 전범 피해 보상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와 같이 한일협정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입은 피해의 경우에는 일본의 책임과 관련해 협정의 해석에 관한 한·일 양국 간 분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B·C급 전범 피해 보상 문제는 한일협정과 관련이 없다며 일본의 주도적인 해결을 촉구해 온 점, 동진회가 B·C급 전범으로 처벌된 피해의 보상을 주로 요구해 온 점 등이 근거였다.
또 "피청구인(한국 정부)이 그동안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해결 및 보상 등을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이상, 피청구인은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자신의 작위의무를 불이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이석태·이은애·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전범재판 피해에 대한 다수 의견에 찬성하지만, 일제 강제동원 피해 부분 청구에 대해서는 부작위가 인정돼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 전경. 사진/헌재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