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불가리스 사태'로 지난 5월 대국민 사과에서 흘린 눈물은 결국 논란을 잠시 피해가려는 홍원식 회장의 '악어의 눈물'이었다. 그날 그자리에서 그는 회장직 사퇴와 함께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을 다시 한번 믿어달라"며 57년의 남양유업의 매각 결단을 내린 홍 회장에 그동안의 오너리스트를 충분히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국민들은 갈채를 보냈고 칭찬했다.
그역시 착각이었다.
눈물의 기자회견 후 홍 회장은 한앤컴퍼니가 오너일가 지분 전체를 3100억원에 매각하는 주식양수도계약(SPA)를 체결했지만 홍 회장은 경영권 매각을 위한 임시주총에 출석하지 않고 결국 3달 만에 돌연 회사를 팔지 않겠다며 매각 계약을 뒤집었다.
회장직을 내놓겠다는 홍 회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면서 출근하고 있고 회사 자금을 부당사용해 논란이 빚어졌던 장남 홍진석 상무는 슬그머니 복귀했다.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은 미등기 임원으로 오히려 승진까지 했다. 특히 홍 회장 부인 이운경 고문도 임원급으로 업무용 차량과 법인카드도 제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양유업의 책임 회피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해 홍원식 회장 등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경쟁사를 비방하는 댓글 작업을 벌였다는 논란에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입장문을 통해서도 경쟁사를 지속적으로 비방하고 홍보대행사에 잘못을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여서 소비자 공분을 샀다. 2019년에는 유아용 주스에서 곰팡이가 발견되자 사흘 만에 사과문을 내 늦장대응 논란이 일었으며 제조상 문제가 없다는 내용과 함께 유통 과정의 문제로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 홍 회장이 또 한번 신뢰를 잃었다. 이번에는 부당인사 의혹이다. 특히 홍원식 회장이 주도적으로 부당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여성 팀장이 육아휴직을 냈다고 통보 없이 보직해임하고 물류창고 등으로 부당한 인사 발령이 실시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 회장이 부당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녹취록도 공개됐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남양이 남양했다', '남양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 회장의 매각 번복으로 오너리스크가 다시 발목을 잡으면서 매각 계획 발표 후 장중 최고 81만3천원까지 올랐던 남양유업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소비자들은 또 다시 남양유업과 관련된 상품 리스트를 공유하며 불매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남양유업 노조는 "회사를 위기에 빠트리고 대책도 마련하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는 오너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남양유업 구성원 전체가 위기"라며 "회사 이미지와 가치는 바닥을 치는 것을 넘어 회생불가한 수준"이라며 "회사를 개인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직원들을 한낱 도구로 생각하는 파렴치한 행태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양유업 제품 판매 대리점들도 어려운 시기에 소비자 불매운동과 외면으로 매출 감소 등 피해가 크다며 조속한 사태 해결책을 촉구하고 있다. 홍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책임지지 않는 행태에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이번 사태도 이미 예고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양유업은 내일 임시주총을 열고 오는 10월 임시 주총을 추가로 개최한 뒤 경영 안정화를 위한 주요 사안들을 결정한다. 홍원식 회장은 소비자들이 왜 10년 가까이 남양유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회장직에 물러나고 자식들에게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또 재매각 의사를 밝힌 만큼 하루 빨리 회사 경영을 정상화해 매진해 소비자들 뿐 아니라 소액주주들과 낙농가, 대리점주, 직원들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 그것이 홍 회장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신뢰를 조금이나마 찾고 57년간 남양유업을 사랑해 준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약속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천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박상효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