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뭐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자동차만 빼고다.
'수천만 원대의 자동차를 온라인으로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지만 이미 명품 쇼핑은 온라인이 대세다. 그동안 백화점·아웃렛·면세점이 독점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현대차도 최근 내놓은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기로 했다. 노조와의 협의도 마쳤다. 캐스퍼가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위탁 생산하는 차량이라 가능했다. 또 온라인 판매가 캐스퍼에 한정된 점이 고려됐다.
소비자들은 크게 반응했다. 캐스퍼는 지난 1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사전계약에서 첫날에만 1만8940대가 접수됐다. 이는 현대차의 내연기관차 사전예약 최대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19년 11월 출시한 6세대 그랜저 부분변경 모델(1만7294대)이다.
자동차의 온라인 판매는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모든 차종을 온라인으로 판매하자 BMW·볼보·메르세데스-벤츠 등도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수입차 업계 1위인 메르세데스-벤츠는 15일 공식 온라인 판매 플랫폼 '메르세데스 온라인 샵'을 론칭하며 온라인 판매에 힘을 실었다. 인증중고차부터 시작하지만 연내 신차 영역으로 온라인 판매를 확장한다.
현대차그룹도 미국과 유럽, 인도 등에서 온라인 판매를 확대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판매 노조의 반발 등을 우려해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기아가 전기차 EV6 사전예약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하자 판매노조가 "온라인 판매로 확대될 수 있다"고 반발해 결국 온라인과 전국 대리점에서 동시에 접수할 수 있도록 했다. 판매방식이 더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번 캐스퍼의 온라인 판매 협의 역시 온라인 판로 개방이 아닌 노조와의 협의 없이는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없다는 취지라며 으름장을 놨다.
2019년 테슬라가 온라인에서 차를 판다고 했을 때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긴 세월 굳어진 자동차 구매 방식이 쉽게 바뀌겠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테슬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판매하는 기업이 됐다. 소비자 대부분은 매장에서 보지도 않고 산 셈이다.
세상이 변했고 자동차도 변하고 있다.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시장은 위기에 처했고 동시에 전기차, 자율주행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판매방식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대리점으로 가서 자동차를 구경하고 좋은 딜러를 찾아 나서고 싶지 않아 한다.
현대차그룹 노조는 귀를 막고 있다.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현대차그룹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체질 개선 중이다. 판매방식에서의 혁신도 함께 이뤄지길 기대한다.
황준익 산업1부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