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부터 본지가 집중 보도한 '세정협의회 비리'는 일선 세무서와 납세자 간 소통 창구가 '로비 창구'로 전락하게 된 과정과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무서장들은 세정협의회 민간회원들에게 세무조사 유예 등의 특혜와 민원에 대한 대가로, 퇴직 후 월 4000만원대의 고액 고문료를 받아 챙겼다. 1971년 출범한 세정협의회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잘못된 관행이 켜켜이 쌓였고, 이는 적폐가 돼 지금의 로비, 뇌물 창구가 됐다.
이쯤 되면 세정협의회를 전면 해체하고 반성과 개혁을 다짐할 법도 한데, 김대지 국세청장은 기대했던 '전면 폐지'에 대한 분명한 약속이 아닌 "존속하지 않는 방향에서 검토하겠다"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내놨다. 국회 국정감사를 받는 피감기관장으로서의 자세가 아니었다. 때문인지, 국회와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당장 제기됐다. 대단한 특권 의식이다.
국세청의 '이상한 창구'는 비단 세정협의회만이 아니다.
"어느 매체에서도 국세청 대변인 실명을 넣고 기사를 쓰는 곳은 없습니다. 제 이름은 기사에서 빼고, 국세청 관계자로 처리해 주세요. 저희 관행입니다."
"국세청에 대한 질문은 서면으로 제출해 주세요. 서면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질문은 대변인실 메일을 이용해 서면으로 질의를 해주십시오."
귀를 의심케 한 발언의 주인공은 장신기 국세청 대변인이다. 대변인은 대언론 창구로, 해당 기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다. 익명의 '관계자'로 처리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청와대 수석들조차 관계자 처리를 요청할 때는 기자들의 동의를 거친다. 심지어 공당 대표, 대선후보, 정부 장·차관들도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그 통화 내용이 실명으로 기사화된다. 그런데 유독 장신기 국세청 대변인은 관계자를 요구하고 질의는 서면으로 하라고 한다. 적폐가 된 관행을 계속 고집한다.
국세청이 이렇게 '이상한 창구'(세정협의회·대변인)를 고집하는 데는 그간 개혁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검찰, 경찰, 국정원과 함께 이 나라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지만 개혁에서만큼은 국세청은 예외였다. 때문에 조직문화가 더 폐쇄적이 됐고, 철저하게 위계와 서열을 따지는 수직문화가 뿌리 깊게 박혔다. 대통령을 능가하는 과도한 의전 또한 이 같은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세청 관계자들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장신기 대변인에게 기자 입장을 전한다.
"대변인님, 저에게 항의 또는 연락할 일 있으시면 서면으로 질문을 주세요. 관행은 아니지만, 전화로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습니다. 제 이메일 주소는 choibh@newstomato.com입니다. 참고로, 제 이름은 관계자로 처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병호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