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남북한 산림 협력'을 제안했다. 대북 제재에 덜 민감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산림 복원 지원으로, 남북 대화의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북한의 방역조치 움직임이 여전히 변수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나무를 키우고 산림을 되살리는 일은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한 해결책이다. 사막화를 막고, 접경 지역의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며 "남북한 산림 협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남북이 산림 협력을 하겠다는 것으로, 국제무대에서 명분을 갖추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 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와대도 문 대통령 제안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2일 연합뉴스TV와의 인터뷰에서 "다목적의 포석을 두고 굉장히 좋은 제안을 한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한 걸음이라도 진전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미 협상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 산림 협력은 실현 가능한 제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당시 남북이 산림 협력에 대해 이미 합의했기 때문에 이 틀을 통해 협의를 계속 진행하고, 합의된 사항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인도적 지원 방안 논의로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시 정상회담에서 산림 분야 협력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북미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산림 복원을 비롯한 인도적 협력 논의가 일절 중단됐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산림 협력 방향으로 나가려면 우선 남북이 합의했던 사항들부터 이행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며 "산림 병해충 공동방제라든지, 양묘장 현대화를 통한 북한 지역 산림 녹화 협력 등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림 협력에 대한 협의가 계속 진행되면 이미 합의한 사항 외에도 기후변화 공동 대응을 위해 추가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사항들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평양공동선언문에는 남북 산림 협력 외에도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협력,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정상화, 방역 및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 강화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남북 협력 사업의 첫 단추인 산림 복원 문제의 진전 여부에 따라 다른 합의사항들도 추가 논의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남북 산림 협력이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북 인도적 지원 방안으로 보고, 남북 협력의 출발점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산립 협력 부분에 대해서는 남북 간에 공감이 돼 있고, 특히 비정치적인 분야"라며 "김정은 위원장도 북한 산림 상태에 대해 나름대로 수림 조성에 대해 의지가 있다. 남북 간에 대화가 되면 산림 협력에 대해 충분하게 공감대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산림 협력은 남북이 상호 동의할 수 있는, 상호 접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협력 분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남북 협력의 출발점으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며 "지금 시점에서는 남북 산림 협력을 통해서 현재 상황을 풀어보자는, 상황 개선의 마중물로서 산림 협력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인도적 지원을 앞세운 한미의 대화 재개 시도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온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상황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중 접경지역에서 교역재개 징후가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 북한의 새 방역 조치가 발표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 달라진 북한의 움직임에 정부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종주 대변인은 "(코로나19 상황은)산림 협력뿐만 아니라 모든 북한과의 대화·협력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북한의 코로나 상황, 그리고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방역조치 강도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9월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