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공직개혁을 위해 교육부와 5급 공채(공개경쟁채용시험) 폐지 검토에 착수했다. 교육부 기능은 내년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로 옮기는 한편 5급 고위 공무원 임용제도를 손질, 개방형 채용을 늘리고 7·9급 공무원 승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3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이 후보의 싱크탱크인 '세상을 바꾸는 정치 2022년'(세바정)은 공직개혁 방안 중 하나로 교육부와 5급 공채 폐지를 논의한 뒤 보고서를 만들어 이 후보에게 전달했다. 보고서는 아직 민주당과 공유되지 않았으나, 공직개혁에 대한 이 후보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교육부 폐지 초강수…"현행 교육시스템 한계 극명, 미래인재 육성해야"
이 후보 측 관계자는 교육부 폐지에 대해 "대전환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미래인재를 키워야 하는데, 현행 교육시스템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게 후보의 고민"이라며 "산업화 시대에 만든 교육시스템을 관료제 중심으로 운영하는 교육부를 이제라도 폐기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교육부 장관은 사회부총리까지 겸직, 그 위상이 높다. 때문에 교육부 폐지라는 초강수를 통해 교육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공직사회에도 확실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후보가 현행 교육시스템에 불만을 제기하며 교육부 폐지를 언급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7년 민주당 경선에서도 이 후보는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물론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박근혜정부에 대한 불만이 컸다. 당시 이 후보는 "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인데, 인간이 생존하려면 창의적이고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창의적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면서 "교육부처럼 국정교과서나 만들겠다는 곳은 폐지해야 옳다"고 했다.
교육부 폐지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구상과도 연결된다. 이 후보 측에 따르면 교육부를 폐지할 경우 그 역할은 내년 7월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가 대신하게 된다. 교육위는 올해 7월1일 국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내년 7월부터 대통령 직속 기구로 운영된다. 교육위는 대학입시와 교육과정 등 10년 이상 중장기 교육계획을 수립키로 했다. 특히 정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새 정권은 기존 정책을 번복할 수 없도록 했다. 교육위가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면 교육부가 세부 정책을 집행키로 했으나, 이 후보 측에선 세부 정책도 교육위에 맡기겠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역대 정권 출범 때마다 '백년지대계'를 주창하며 의욕적으로 새로운 교육정책을 내놔도 결국은 '늘공'(늘상 공무원)이 있는 교육부를 통해 시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상하게 변질됐다"면서 "교육부를 폐지하고 교육 계획 수립과 정책 운영에 관한 모든 논의를 교육위에서 하자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라고 귀띔했다.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5급 공채도 없어질 듯…"'늘공' 무사안일주의 혁파한다"
교육부 폐지 명분으로 늘공 문제가 지적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공직사회 체질 개선을 위한 5급 공채 폐지도 주요 의제다. 현행 행정직 공무원 임용은 9급, 7급, 5급 공채를 통해 이뤄진다. 5급 공채는 과거 명칭이 '행정고시'였을 만큼 고위 관료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역대 행정부처 장관과 차관, 실·국장 등 고위 공직자는 매번 행시 출신 위주로 임명됐다. 비행시 출신이 중용되면 그게 오히려 뉴스가 될 정도였다.
이 후보 측 다른 관계자는 "후보가 재선 성남시장과 민선 7기 경기도지사를 했기 때문에 공직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고, 늘공 문제를 방치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며 "공직사회의 전문성 유지와 체질개선 대책을 고민한 결과, 개방형 채용을 확대하고 7·9급 공채 승진을 강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5급 공채를 없애고 전문경력을 가진 개방형 인재를 채용하며 7·9급 공무원을 승진시키겠다는 건 공직자가 엘리트 관료주의에 빠져 서민생활과 유리되는 걸 우려한 측면도 있다. 한 관계자는 "5급 공채에 합격하면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데, 사실 이들은 시험만 잘 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며 "'내가 최고다' 이런 사고방식에 빠지는 일이 많고, 공무원 신분보장 탓에 서민의 어려움은 잘 모른다"고 했다. 이 후보가 "공직자는 주권자인 국민을 대리하는 머슴"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후보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갈등을 벌이면서 공직자의 무사안일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0월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 나라에는 여당, 야당 외에 관(官)당이 따로 있다"면서 "이 나라는 기재부가 아닌 국민의 나라이고, 기재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민을 위해 무한충성하는 대리인이자 머슴임을 기억하길 바란다"라고 직격했다.
이 후보 측에 따르면 교육부와 5급 공채 폐지 등은 아직 민주당이나 '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등과 내용이 공유되지 않았다. 다만 "공직개혁에 대한 이 후보의 의지가 매우 강해 일부 조율을 거쳐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 모임인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포럼'도 토론회를 열고 책임총리제와 장관책임제 도입, 기재부와 경제부총리 권한 축소 등을 주장한 바 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