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조 사용 후 배터리 시장, 기업이 주도 해야"

"전지협회, 표준 제정은 권한 확대 측면…기업 이익과 무관"
전기차 선도국, 배터리·전기차 제조사에 폐배터리 관리 의무 부여

입력 : 2021-11-15 오전 6:00:47
[뉴스토마토 백주아 기자] 한국전지산업협회가 사용 후 배터리 동맹 결성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업계 관계자들은 유망 산업을 협회 주도로 이끌어 나가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들이 일찍부터 닦아 놓은 사업 영역에 숟가락 얹는 방식은 구태이며 배터리 산업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인재 양성 등 정부 정책 측면의 개선을 이끌어 내고 기업 애로를 해결하는 협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4일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사용 후 배터리 관련 시장은 2019년 기준 1조6500억원에서 2030년 약 20조2000억원을 넘어 2050년 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 후 배터리 관련 사업은 폐배터리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재활용'과 차량용 외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재사용' 두 분야로 나뉜다. 
 
SK온이 SK이노베이션 연구원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정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사진/SK이노베이션
 
전지협회는 폐배터리 관련 국가적 가이드라인 마련을 통해 재사용-재제조-재활용을 한번에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산업 초기에 협회가 주축이 돼 하나의 기준을 세워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전지협회 관계자는 "새로운 산업에 대해 기업들이 스스로 기준을 못 만들어 나가고 있는 만큼 협회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관련 설비를 갖춰 개런티 범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등을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사업을 통해 영리를 취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협회 측 사업 계획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실효성 측면의 의문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이차전지 전문가는 "각 기업마다 배터리 용량, 규격, 성분, 설계 등이 다른 것을 하나의 표준으로 일원화하는 발상부터 잘못됐고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면서 "표준 인증 사업을 통해 협회 차원의 권한과 역할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 반응도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 기업들 스스로 사업 모델을 만들어 오는 과정에서 협회가 정책적으로든 사업적으로든 도움을 준 것은 없다"면서 "돈이 될 것 같으니 이제 와서 뛰어들겠다는 심산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황당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케이프투자증권에 따르면 사용 후 배터리에서 코발트·니켈·탄산리튬 추출시 나오는 유가금속은 자동차 한 대당 약 100만원에 이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폐배터리 배출 규모는 올해 440개(104톤)에서 오는 2029년 7만8981개(1만8758톤)로 약 180배 증가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폐배터리 시장 개화에 앞서 각자 사업화를 준비 중 이다. 국내 1위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분사 전 LG화학(051910))은 지난 2018년 호주 폐배터리 처리 업체 ‘인바이로스트림’와 새 배터리를 생산하는 순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자사 '얼티엄셀즈'를 통해 북미 최대 배터리 재활용 업체 리사이클(Li-Cycle)과 폐배터리 재활용 계약을 체결 했다. 삼성SDI(006400)는 피엠그로우와 성일하이텍 등 국내 리사이클 전문업체와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SK온(분사 전 SK이노베이션(096770))은 폐배터리 재활용(BMR) 관련 자체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오는 2022년 초 BMR 시험 공장 세우고, 2025년부터 상업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8일에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과 함께 폐배터리 성능을 검사하는 평가체계 개발에 돌입했다. 현대차(005380)는 2018년 핀란드의 바르질라와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한 이후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 파워로직스(047310), OCI(010060), 한화큐셀 등과 다양한 기술 제휴 및 협약을 맺고 전략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기차 선도국은 일찌감치 사용 후 배터리 관련 법령·제도를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 2009년부터 배터리 수거 의무를 규정하는 신배터리법을 도입해 배터리 제조·수입·유통업체에 노후 배터리 회수·재활용 의무를 지웠다. 중국은 전기차 판매 업체가 배터리 회수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 국립연구소 주도로 폐배터리 재활용 연구를 확대하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늦지만 국내는 정부가 지난해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면서 관련 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업계는 전지협회가 비영리기관으로 회원사들의 분담금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본연의 역할에 더 집중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협회는 주된 역할은 △회원사 애로사항 지원 △전지 산업정보 제공 △협회 추진사업 참여 기회 제공 △해외시장 개척 지원 △연구개발(R&D) 사업 참여기회 확대 △회원사간 교류활동 지원 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지협회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조직이다 보니 반도체협회나 석유협회 등과 비교했을 때 참여 기업도 많지 않은 데다가 산업 홍보나 정책 지원 등이 아직 체계화가 안된 측면이 있다"면서 "경쟁사가 모여 있긴 하지만 산업 발전 차원에서 인재 양성 등의 '원 보이스'가 필요한 부분이나 관계 법령 개정, 정부 지원책 마련 등 전지업을 영위하는 업체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더 집중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터리 산업 성장기 하나의 협회로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산업부와 환경부 등 정부 주무부처는 전지협회 역할을 전지 생산자 협의체에 국한해야 한다"면서 "사용 후 및 폐 전지 관련 후방 산업은 전기차 산업 협회라는 별도 민간 협회가 있는 만큼 어느 한 곳이 사업을 독점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백주아 기자 clockwor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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