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업데이트 안된 내비

입력 : 2021-11-18 오전 6:00:00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내년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를 10개월 째 매주 해오고 있다. 선거전 초반이긴 하지만 특징이나 단상을 정리한다.
 
1. "명색이 대통령 선거인데 열광은 커녕, 열기도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열광할 후보가 없다거나, 집중할 시대정신·쟁점은 없고 고발사주·대장동만 보인다는 얘기로 들린다. 선거는 사람을 열광시킨다는 점에서 축구와 닮은 점이 많다. 그런데 왜 열광할 수 없을까. 아직은 후보와 이슈 두 가지 다 열광 요소가 약한 게 아닌가 싶다. 필자 기억으로는, '열광 선거'는 2002년 노무현과 2012년 박근혜·문재인 후보 대결이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2017년 촛불대선은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뒤 치러진 선거여서 일반적 대선과는 다른 점이 많다. 내년 대선은 열광 대신 이전투구가 판을 치고, 결국은 '덜 나쁘기' 경쟁으로 흐르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다.
 
2. 두 번째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남들이 아주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점이다. 복수나 증오투표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선거는 기본적으로 싸움이다. 그러므로 감정 대립은 선거의 기본 속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다. 싸워서 무찔러야 하는 전쟁. 전쟁 상대는 적이다. 선거가 끝나면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인데, 적으로 규정해버리면 그들과 나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선거는 통합이 최종 목표다. 적이어서는 통합이 무망하다.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기에 경쟁이 아니라 적이고, 전쟁이 되는 것이다.
 
TV토론을 예로 들자. 후보들 깜냥을 비교해 지지할 후보를 고르는 본원적 기능은 갈수록 약해지는 듯하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TV토론은 지지 후보에 대한 믿음을 확신으로 바꾸는 기회다. 그 후보의 좋은 점만 눈에 들고, 상대 후보는 뭘 해도 밉고 흠 투성이다. 보보믿믿.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이 강화되는 게 바로 요즘 'TV토론의 심리학' 아닐까. 마치 학예회에 간 학부모에게 자기 아이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3. 마지막으로, 후보들 선거운동이 업데이트 안된 네비 같다는 점이다. 모든 후보들이 2030에게 총력 질주중이다. 행안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2030은 1494만명이고 총 유권자의 34%다. 21세와 39세 간 차이는 39세와 41세의 차이보다 몇 십 배는 크다. 그러므로 10진법 세대구분은 부정확한 소가 많은데, 편의적 관행이 된지 오래다. 내키지 않으나 그 분류를 따르겠다. 최근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2030의 약 40%는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고, 정했어도 60%는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답한다. 40세 이상에서는 후보를 정한 사람이 80%에 육박하고, 그 중 약 75%는 "엄청나게 큰 일이 생기지 않는 한 후보를 바꾸지 않겠다"고 답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40세 이상은 투표를 내일 하나 내년 3월에 하나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후보들이 2030에게 우루루 달려가는 거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시험 임박해서 벼락치기 하듯, 암기과목 밑줄 쳐가며 달달 외우듯 달려오는 후보들, 와서 뻔한 축사에 사진 한 장 박는 후보들을 보면서 2030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고맙다? 뜬금포?
 
책꽂이에서 10년 전 책을 꺼내 보시라. 활자도 작고 문투도 생경하고 종이 마저 누렇다. 여간해서는 읽을 마음이 안 든다. 2~30년 전 구닥다리 정치문법으로 짠 일정과 동선에 따라 '초 신세대' 2030에게 다가간들 어떻게 소통이 되겠는가. 업데이트 안된 내비게이션에는 이미 뚫린 길도 표시가 안돼 헤맬 수 밖에 없다. 지금 각 후보 선거캠페인은 업데이트 안된 내비는 아닌가. 성별 세대별 지역별 맞춤 공약, 중요하다. 그러나 각 그룹의 기본 정서를 뚫고 들어가지 않는 한, 구식 선거교본에 따른 축사와 급조된 공약은 공염불이기 십상이다. 향후 대선 기간 동안에는 필자의 이런 푸념이 무색해지기를 소망한다.
 
뭐만 썼다 하면 나오는 맞춤법 시비나 '왕(王)'자 옥신각신, '점'이 있니 없니 따위의 얘기들…6개월 촛불로 주권재민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운 시민들에게는 너무 저급하고 부끄러운 거 아닌가. 보기 딱하다. 속는 셈 치고 긁는 복권처럼, 시대정신과 미래 비전을 거듭 주문한다. 물정 모른다는 타박을 각오하고.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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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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