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적지 않은 범죄 신고자가 오늘도 보복 범죄에 떨고 있다.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보복범죄 예방이 피해자의 소극 대처와 사법기관 불신 등 악순환을 깨는 첫 단추이므로, 세심한 수사와 이를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편집자주>
자신이 스토킹 하던 전 여자친구 접근금지에 앙심을 품고 찾아가 살해한 김병찬이 내년 1월20일 첫 재판을 받는다. 김병찬 사건은 범죄 신고자들이 겪는 협박과 폭행 피해가 결국 살인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스토킹 피해를 수차례 신고해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병찬이 지난달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협으로 시작 살인까지 이어져
보복 협박은 처음엔 위협으로 시작해 가벼운 폭력에서 상해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0월 실형 선고 받은 A씨다. 그는 지난해 5월 어느날 새벽 4시에 경운기로 밭을 갈다 이웃 B씨로부터 "조용히 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며칠 뒤 A씨는 도끼로 B씨를 위협했다. 같은해 8월에는 식사하는 B씨 일행을 찾아가 엔진톱 시동을 걸고 욕설했다. 눈이 마주친 사람의 목 부위를 공격할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엔진톱을 이용한 협박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에 B씨가 A씨를 고소했다. 격분한 A씨는 피해자를 찾아가 욕하며 다리를 수차례 걷어찼다. 도로에서 화물차로 B씨 차량을 가로막아 주먹 크기 돌 두 개를 차량에 던지고, 도망가는 B씨 차량을 들이받아 전치 3주 피해를 입혔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상해 혐의도 있다.
지난 10월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심신미약을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상세 불명의 우울증'을 인정하면서도 사물 변별력과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하지 않다며 배척했다.
사전에 막지 못한 보복범죄가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C씨는 지난 2013년 우연히 마주친 이웃 여성 D씨 번호를 알아내 "나이트에서 만난 사람"이라며 문자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D씨가 사실이 아니라며 신원을 밝히라고 해도 외모에 자신 없던 C씨는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불안감을 느낀 D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C씨와 합의해주지 않았다. 이후 D씨가 사람들 앞에서 C씨의 잘못을 지적했다. C씨는 만취 상태로 D씨를 찾아가 수차례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1심은 살인죄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술에 취했고 열등감에 따른 분노를 못이기고 범행한 점, 전과가 없고 90세 노모를 홀로 부양한 점 등이 참작됐다. 검찰은 2심에서 공소사실을 보복살인으로 바꿨고, 징역 23년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선고를 확정했다.
보복범죄 꾸준히 늘어
대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보복범죄 사건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7년 389건이던 사건 접수는 지난해 535건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 접수된 보복범죄는 11월까지 511건에 달했다.
보복범죄는 협박과 폭행 순으로 많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처법)상 보복협박은 2017년 186건에서 올해 294건으로 부쩍 늘었다. 같은 기간 보복폭행은 102건에서 112건으로 증가했다. 보복상해도 2017년 95건에서 지난해 78건, 올해는 11월까지 67건 등 적지 않다.
보복 이유 대부분은 첫 가해를 피해자가 신고한 데 따른 앙갚음이다. 대검의 '2020 범죄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형법상 협박 동기가 보복으로 확인된 98건 중 38건이 신고·고소에 대한 보복이었다.
형법상 폭행 52건 중 절반에 달하는 23건도 같은 이유에 따른 앙갚음이었다. 상해는 32건 중 15건, 살인 동기 15건 중 5건이 신고·고소였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