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칠레 대선, 한국 대선

입력 : 2021-12-24 오전 6:00:00
12월 19일 남미의 칠레에서도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칠레는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택하고 있는데, 이날 선거는 결선투표였다. 
 
결선투표의 승리자는 만35세의 가브리엘 보리치였다. 1986년생이다. 세계 최연소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보리치 대통령 당선자는 내년에 취임하면 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만40세 이상으로 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보면, 만35세 대통령이란 놀랍고도 부러운 일이다. 
 
이번 칠레 대선은 매우 역동적인 선거였다. 11월 21일에 있었던 1차 투표에서 보리치는 25.82%를 득표해서 2위를 했다. 1위를 차지했던 후보는 27.91%를 득표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였다. 만약 대한민국같은 선거방식이었다면, 카스트가 곧바로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득표율에 관계없이 1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칠레는 결선투표제를 택하고 있어서, 1위 후보와 2위 후보를 놓고 다시 한번 투표를 한 것이다. 그리고 결선투표에서 보리치는 55.9%를 얻어, 44.1%를 얻은 카스트 후보를 앞섰다. 
 
만약 칠레가 한국같은 대통령 선거방식이어서 27.91%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탄생했다면, 과연 정상적인 직무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일까? 아마도 큰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70% 이상의 유권자들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선투표를 통해 55.9%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기에, 아마도 보리치 당선자는 보다 힘있고 책임있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라고 해도, 결선투표제의 채택 여부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결선투표제가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자리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정치적 혼란과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또한 결선투표 과정에서 여러 정치세력 간의 연합정치도 가능하다. 
 
사실 한국의 내년 대선을 보면 걱정이다. 거대 양당의 후보가 정해진 이후의 양상을 보면, ‘네거티브’가 선거를 지배하고 있다. 비전이나 정책은 설 자리가 없다. 어느 쪽이 승리한다고 한들, 상대방 후보를 지지한 국민들이 과연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3의 후보가 크게 지지를 얻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확실한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선거 전날까지 ‘투표를 해야 할지’,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최소한 1차 투표에서는 당선가능성에 관계없이 소신있게 지지할 후보를 정할 수 있을텐데, 한국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식의 대통령제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제가 가진 장점도 있지만, 지금은 단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특히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정책기조가 널뛰기를 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나 불평등·양극화 해소처럼 장기적이고 연속성이 필요한 의제들을 풀어가기에는 대통령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두가지 선택이 필요하다. 하나는 대통령제를 유지하겠다면, 개헌을 해서라도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7년에 있을 차기 대통령 선거부터는 결선투표제가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을 40세 이상으로 한 헌법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선택지는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재검토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치밀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고집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950년대 자유당 정권을 거치면서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고, 그래서 4.19 혁명 이후에 의회제(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그런데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다시 대통령제로 회귀한 것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주권자들이 대통령제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1987년에는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꾼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제가 과연 지금의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는데 적합한 정치제도인지에 대해 논의할 때가 됐다. 
 
대통령 후보라면 지금 필자가 얘기한 두가지 문제에 대해 입장과 일정을 밟혀야 한다. 대선 이후에 헌법개정 논의를 진행할지? 그리고 그와 연관된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어떻게 할지? 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대선을 보며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주권자들이 미래를 보고 판단할 지점이라도 생길 것 아닌가?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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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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