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바탕화면 휴지통에 버려둔 파일을 완전히 삭제하듯, 2021년을 통째로 도려내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가 낀 황금 같은 주말저녁 책상머리에 앉아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일도 안 풀리고 관계는 소원해지고 벌이는 시원찮고 건강은 내 나이보다 더 빨리 나이 드는 것 같고 미래는 아득하고, 이게 다 코로나 탓 같다.
작년 한 해만 버티면 될 줄 알았는데, 1년치를 예상해 준비해둔 인내심이 바닥 난 모양이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은 기분이어서 그런지 일상의 온갖 것에 짜증만 늘었다.
일이 조금만 안 풀려도 스트레스를 받고, 주가가 조금만 빠져도 화가 나고, TV 뉴스에서 정치인 얼굴을 보면 꼴 뵈기 싫어 채널을 돌리고, 가족과 친구,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차선 변경이나 주차 같은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고.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나이를 오십이나 먹고서 어린아이처럼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짜증내면서 이러고 살고 있나’ 자괴감이 들어 그게 또 스트레스로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사실 올해 짜증을 냈던 모든 상황은 지난 수십년 동안 겪어왔던 일상이었다. 직장생활 25년 동안 일이 풀리면 풀리는대로 안 풀리면 안 풀리는대로 어떻게든 했다. 주식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반토막 났던 경험도 있는데 이쯤이야. 심지어 올해는 올랐다. 밉상 정치인은 언제나 있었고, 사소한 시비쯤 일상 아니었나?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작년 봄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갑자기 찾아든 것이 아닌데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민감도만이 유난히 치솟았을 게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 같진 않다. 올 한 해 힘들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떡게든 한 해만 버텨내면 될 줄 알았는데 한 해 더 이어진 코로나 시국 영업 규제로 인해 결국 벼랑 끝으로 내몰린 소상공인부터, 어른도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2년째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오간 아이들도 적잖이 고생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만 보면 이들이 쏟아내는 짜증이 온세상을 집어삼킨 것처럼 보인다. 일단 인터넷 포털에 올라오는 뉴스를 보면 부정적인 뉴스의 숫자가 더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긍정적인 뉴스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이다. 실제로 각 매체의 기사 비중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노출되는 비율만큼은 그렇게 보인다.
부정적인 뉴스도 뉴스 나름이다. 일반적으로는 논거가 있는 비판적인 뉴스가 나와야 정상인데, 이건 아무리 봐도 비판 목적이 아니라 독자들의 비난과 조롱, 혐오를 부추기는 것 같은, 일부러 배설용 욕받이로 만든 그릇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지난 2년 동안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기분. 나아가기는커녕 몇 발 뒤로 퇴보했다는 열패감이 많은 이들에게 가득하다. 개인적으론 이걸 지우고 싶은 마음이 올해를 삭제하고 싶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정말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이런 잡념들도 ‘Delete’ 키로 싹 사라졌으면 좋겠다.
벼랑 끝에 선 분들에겐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늦게나마 좋은 인생 공부한 해로 기록할 생각이다. 나와 가족과 지인들과 내가 모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길 기원한다. 건강만 하다면 열패감을 딛고 일어나 다시 출발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