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최근 KBS 1TV의 드라마 ‘태종 이방원’ 제작진을 상대로 ‘동물학대’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낙마 장면을 촬영하다 고꾸라진 말이 사고 후유증으로 일주일 뒤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작진을 향한 국민들의 처벌 요구가 거세진 것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동물은 재물손괴죄를 적용하는 ‘물건’에 해당하고, 동물보호법으로 처벌을 받으려면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처벌 여부와 그 수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동물보호단체들, ‘동물학대 치사’ 혐의로 고발
동물자유연대가 입수한 당시 현장에서는 말의 앞 두발에 와이어가 묶였고 사람들이 와이어를 세게 잡아당기는 장면이 나온다. 전력 질주하던 말은 뒤에서 잡아당겨진 와이어 때문에 뒷다리가 공중으로 올라고, 머리는 90도로 꺾여 바닥에 내리 꽂힌다.
말은 낙마 충격으로 한동안 미동이 없었지만 KBS가 내놓은 공식 입장은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나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후 돌려보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말은 후유증으로 1주일 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제작진들을 연이어 고발하기 시작했다. 단순 사고나 실수가 아닌, 일부러 넘어지도록 세밀하게 계획한 연출로 ‘고의적인’ 동물학대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2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동물자유연대’와 ‘한국동물보호연합’ 등도 같은 사유로 21일 영등포경찰서에 고발장을 각각 접수했다.
시청자들의 드라마의 제작 중단 요구도 빗발치는 상황이다. KBS 시청자권익센터는 해당 드라마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도배됐고, 이와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도 이틀 만에 5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현행법상 동물은 ‘물건’…학대 ‘고의’ 여부에 처벌 수위 달려
동물자유연대와 한국동물보호연합 등은 이번 사고는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동물학대 등의 금지)에 따라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도구ㆍ약물 등 물리적ㆍ화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물보호법이 있어도, 학대에 대한 정확한 판단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아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동물권에서 꾸준하게 제기됐었다. 타인의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여도 형법상 ‘재물손괴’ 적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위자료 등을 청구할 수 있는 민법 98조의 2를 신설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이방원 현장에서는 말이 심각한 부상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는데, 이는 명백한 동물학대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처벌감이 될 수 있다”며 “동물의 지위를 격상하는 민법 98조의 2가 입법될 경우 사법부에서 지금보다 더 무겁게 양형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동물 학대나 피해에 대한 후속 조치가 충분하지 못한 이유를 민법상 동물이 물건으로 취급고, 이것이 민법 개정의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동물은 그 자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해도, 형사처벌 근거가 여전히 약해 학대 재발 방지법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찬형 법무법인 청음 대표는 “부상을 당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고꾸라지는 장면을 위해 말이 투입했기에 사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미필적 고의’ 가능성이 있다”며 “사람은 다치게만 해도 과실치상이 성립되지만 단순 민법 개정안 만으로는 처벌 기준이 약하기 때문에 형사법이 뒷받침 돼야 동물보호법이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일 방영된 '태종 이방원' 7회에 연출된 이성계의 낙마 장면. 사진/동물자유연대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