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지지율 30%대 박스권에 갇혔다. 다양한 원인 분석이 뒤따르는 가운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대비되는 전선의 실종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윤 후보가 내건 '정권심판론'에 맞서 '재집권의 명분'을 국민에게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민주당 내에선 이 후보가 외연 확장을 노리고 '중도실용'을 표방했으나,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만 낳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3일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선대위 자체분석 결과 이 후보의 확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매주 실시한 '선거 및 사회현안 정기 여론조사'를 비롯해 1월 셋째주 한국갤럽, 전국지표조사(NBS), 리얼미터,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결과들을 분석하면 다자대결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30%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흐름은 지난해 10월 이후 석 달째다. 2030세대, 서울민심을 포함해 석 달 동안 주요 승부처에서 추가 지지율 상승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반면 윤 후보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 이준석 대표와의 내홍과 부인 김건희씨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들로 연말연초 크게 휘청이기는 했지만 1월 중순 들면서 빠르게 지지율이 복원됐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40%대로 올라선 결과까지 나왔다. 필패 구도로 여겨졌던 야권 분열 역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오히려 이재명 후보에게 향하는 2030 등의 표심을 흡수하면서 안전한 차단막이 됐다는 전문가들 분석도 있다.
2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도 의왕시 포일 어울림센터에서 부동산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민주당 일각에선 전선 형성의 실패를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했다. 한 관계자는 "지지율에선 '이재명 대 윤석열' 양강 구도지만 의제 설정에선 '이재명 대 윤석열'의 대결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정권교체론에 맞설 대전략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여전히 50%를 넘는 상황에서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질 수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성급히 중도실용 노선으로 전환한 게 패착"이라고 했다. 외연 확장만 노리면서 부동산 등 주요 현안에서 윤석열 후보와 차별화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너무 일찍 중도실용을 표방했다. 이재명의 강점을 길게 끌고 갔어야 했다"며 "숱한 흠결에도 '개혁만큼은 이재명'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탄했다.
이를 선대위 구성에서 찾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관계자는 몇몇 선대위 핵심 보직을 맡은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소위 측근들이라는 인사들 모두 실용중도 색깔이 강하다. 개혁 성향의 인사들은 주요 의사결정에서 다 배제된 형국"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나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기존 '부자감세'로 읽힐 만한 정책들을 내건 것을 비롯해 재벌개혁이 없는 친기업 행보 등이 중도실용 노선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기본소득을 비롯해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가지급, 국토보유세 도입 등을 놓고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전두환씨 공과 발언도 있었다.
이 후보가 갑자기 중도실용으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종섭 강원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 정치에서 중도실용이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신 교수는 "한국에서 중도실용은 실용적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의미보다는 이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장치"라면서 "실용주의엔 기존 정부의 실정과 모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 후보가 중도실용을 표방한 건 4기 민주정부 창출의 과제와 함께 문재인정부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으로 해석된다. 다만 문제는 문재인정부 차별화가 국민의힘이 말하는 정권교체론과 큰 대척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도실용으로의 노선 변경과 별개로 의제 설정에서 '변별력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 후보 스스로 말하듯 윤 후보와의 공약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점을 찾기 어렵다.
때문에 앞선 관계자는 "중도층을 타깃으로 중도실용을 표방했다면 실제 중도층 지지가 이어져야 하는데 데이터 상으로는 플러스가 전혀 없다. 이는 곧 전략의 미스, 캠페인의 실패"라며 "전략 실패를 인정하고, 이재명만의 강점인 선명함과 '사이다'스러움을 다시 가져오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시 송파구 석촌호수 수변무대에서 즉석연설을 마치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선거 전략과 이 후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 후보 측 한 핵심 관계자는 "이 후보는 원래부터 실용주의를 표방한 사람이었다"면서 "이 후보가 기본소득, 전국민재난지원금, 부동산투기 근절, 서울공화국 해체, 개발이익 환수제 등을 주장하는 건 이념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게 당대의 과제이자 민생문제 해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아예 "이 후보는 원래 좌파가 아니었고 실용주의자"라고 규정했다. "이 후보가 정치입문을 결심하게 된 배경도, 지금의 대선후보가 돼서도 정치의 존재이유로 내세우는 건 '민생'"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이념적 접근도 마다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지적처럼 이 후보의 입에서 실용이라는 말이 갑자기 나온 건 아니다. 이 후보는 지난해 7월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실용적 민생개혁에 집중해 국민의 삶이 체감적으로 바뀌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1월2일 대전환 선대위 출범식 연설에서는 "정치혐오 위기를 실용정치의 기회로 삼겠다"고도 했다. 이 후보는 2017년 대선에 처음 도전하면서도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이 후보는 그해 2월23일 기자회견에서 "저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라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명확한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전략적 한계는 인정했다. 다만 공정과 통합이라는 시대정신 구현을 강조해야 하고, 그것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이 후보의 의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2030세대와 부동산 민심을 얻고자 명확한 전선을 만들려면 결국 '갈라치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그런 선거전략은 공정과 통합을 내세운 이 후보의 정치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