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돈 룩 업'이 되어가는 세상

입력 : 2022-02-07 오전 6:00:00
"과학적 진실을 듣지 못하고 귀 기울이지 않는 현대 문화를 비유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블랙코미디 ‘돈 룩 업(Don't Look Up)’. 이 영화 속 주연인 천문학과 교수 랜들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던진 한줄 평이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놓고 인류는 정치적, 과학적인 면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행동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 입지만을 생각하는 대통령과 시청률 올리기에만 혈안된 언론, SNS 조회수, 종교 등 각계각층의 문제를 유쾌하게 풍자하고 있지만 섬뜩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바보들”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바보 정치인과 돈에 눈 먼 사업가의 선동이 절대악으로 묘사되는 미디어를 타고 대중을 바보로 만든다. 
 
영화는 혜성 충돌을 앞둔 인류의 운명을 말하고 있지만 ‘돈 룩 업’과 같은 실상은 각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1992년 유엔(UN) 주도로 192개국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머리를 맞댄 기후변화협약(UNFCCC)을 꼽을 수 있다. 푸른 지구를 만들기 위한 ‘연대의 힘’은 30년이 흘렀지만 환경협력의 장으로만 남은 채 효과는 전무하다. 30년 간 일궈낸 것도 없이 막연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어야한다는 것과 기후변화의 시계가 빨라졌다는 것만 염불할 뿐이다.
 
기후변화 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난해 세계 환경 전문가들이 모여 논쟁했지만 반쪽짜리 ‘글래스고 기후합의’가 이를 방증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예일대학교 경제학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는 저서 ‘기후카지노’를 통해 정치적 불확실성 등 기후변화 정책이 왜 실패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과학으로 얻는 교훈은 분명하다. 그의 말처럼 녹고 있는 유빙에 올라탄 신세가 돼야 정치 풍향이 바뀔런지.
 
눈치만 보다 늦어버린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정책도 매한가지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건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라고 했던가. 지난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40년 만의 최고인 7%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문제가 올해 11월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큰 화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올해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질문하는 기자에게 욕설한 장면의 외신소식은 그만큼 민감하다는 얘기다. 미국 중산층의 임금인상은 물가급등보다 낮아 실질소득이 가장 크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만의 최고인 7%를 기록할 것을 알고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노력은커녕 제롬 파월 의장의 연임에 대한 정치적 문제로 버블만 극에 달했다. 자칫 늦어버린 기준금리 인상을 보완하기 위해 예상보다 더 올릴 경우 시장의 충격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팬데믹 이전의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코로나 이후 공급망 문제로 가속화되면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경제 블럭화 현상도 한마디로 코미디다. 니편 내편을 가르기 위한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블록화에 올라타야 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팬데믹 방역은 어떤가. 보건 분야의 국제적 협력을 위해 설립한 UN전문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의 리더십은 패권국들로 인해 실추된 채 따로 국밥이 되고 있다. WHO 우려에도 오미크론발 확진 앞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방역 해제를 선언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이 ‘바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3월의 선택이 국가의 명운을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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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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