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22일 오전 출근시간에도 시위를 이어갔다. 같은날 서울교통공사는 "시민들의 불편이 크다"며 전장연의 시위자제를 요청했다. 지난 12월부터 계속되는 시위에 시민 불편이 크다는 것이 이유다.
공사가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공식 대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사는 "시위 때마다 지하철 운행 정상화를 위해 공사 직원과 경찰 별력이 대규모로 투입되고 있어 매번 큰 비용이 소요된다"며 "안전 관련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응이 차질이 빚어질 우려도 크다"고 했다.
"2015년 약속 되풀이…서울시 못믿어"
전장연은 제대로된 장애인 이동권 보장 대책이 나올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형숙 서울 장애인 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시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재정 편성과 대선 후보들의 장애인 이동권 공약이 실현되면 시위를 멈추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 10일 전장연의 요구에 응답했다. 지하철 326개 전체 역사에 최소 1개 이상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1역사1동선’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2025년까지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고, 장애인 콜택시도 운전원 100명을 추가로 투입해 대기 시간을 줄여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시의 공약에도 전장연이 지하철을 가로막는 이유는 지난날 서울시가 신뢰를 어겼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이미 지난 2015년에 서울시는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시내버스를 모두 저상버스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약속대로 진행됐다면 지난해 75%를 달성해야 했지만 66%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전장연은 서울시가 지난 2015년에도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해왔으나 이 역시 지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체 역사에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예산 23억원을 삭감하며 3개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 설계안조차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 (사진=뉴시스)
장애인·시민 갈등에도 정부는 '뒷짐'
전장연은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예산안 편성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31일 통과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이 기재부의 예산 반영이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으로 돼 사실상 휴지조각에 불과해졌다고 지적했다. ‘임의’ 조항에 따라 기재부가 아예 예산을 잡지 않거나 1원만 반영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실제로 반복된 예산 삭감으로 인해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3차 계획에 따르면 42%에 도달해야할 전국 평균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를 넘지 못했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장애인 이동권 예산 근거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기재부는 지난 18일 “관련 부처와 협의하라”며 이들의 뜻을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는 보조금법 시행령상 국비 지원이 불가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전장연은 정부가 나서서 기재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행령은 정부가 추진해 바꿀 수 있는 법령이지만, 기재부가 이를 핑계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는 “장애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도 아닌 정부가 그저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동권은 모든 삶에서 기본이 되는 권리”라며 “선진국이 저상버스 등 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이 잘 보장돼 있는건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5호선 승강장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권 보장 정책, 교육권 연내제정 등을 요구하며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