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고은하·유근윤·이승재·전연주 인턴]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 4~5일 이틀 동안 <뉴스토마토>는 서울 시내 25개구 사전투표소를 돌며 뜨거운 열기를 기록했다. 이번 사전투표는 최종 투표율 36.93%를 기록, 사전투표가 전국 단위 선거에 처음 적용된 지난 2014년 지방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여야 유력주자들의 피 말리는 접전 속에 대선 막판 이뤄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단일화가 진영별 결집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투표 관리엔 심각한 허점을 노출했다.
4일, 사전투표 첫날…한산한 오전, 미어터진 오후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오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한산했다. 평일(금요일)인 탓에 아침부터 투표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대기 줄도 짧았다. 하지만 점심 무렵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직장인들이 짬을 내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연차를 내고 지인 또는 가족과 투표소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강남구 역삼동의 한 투표소 관계자는 "관외 투표줄이 관내 투표줄에 비해 압도적으로 긴 것 같다"며 "점심부터는 줄이 미어터질 것 같다"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서초구 서초동의 투표소 관계자는 "오전 11시까지는 괜찮았는데 이후부터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다"며 "대기자 줄을 투표소 건물 3~5층으로 돌렸는데, 이제는 건물 밖으로 뺐다"고 설명했다.
20대 대선 사전투표는 3월4~5일 이틀 동안 진행됐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역삼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투표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긴 줄이 생겼다. (사진=뉴스토마토)
실제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1일차 투표율은 급증했다. 이날 낮 12시 기준 투표율은 7.11%로, 19대 대선 동시간대 4.64%보다 2.46%포인트 높았다. 송파구 가락동의 투표소에서 만난 20대 남성은 "9일 투표일엔 일이 있어서 사전투표를 하러 왔다"며 "청년들이 살기 쉬워지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구로구 구로동의 한 투표소엔 한 표를 행사하려고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오신 어르신도 계셨다. 고려대 구로병원이 위치해 환자복 차림의 유권자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오후부터는 역대급 투표행렬이 시작됐다. 여야 모두 높아진 투표율에 주목하며 셈법 계산에 분주해졌다. 2030과 중장년층 등 세대별, 여성과 남성 등 성별,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층 등을 구분하기가 무색할 정도였다. 동대문구 전농동에 거주하는 70대 여성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여성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역삼동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사실 대선 때 투표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예전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서 '나라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투표장에 왔다"고 말했다.
20대 대선 사전투표는 3월4~5일 이틀 동안 진행됐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 창4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투표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긴 줄이 생겼다. (사진=뉴스토마토)
5일, 역대급 투표행렬…코로나 관리도 역대급 '구멍'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은 토요일인 덕에 가족 단위 투표자들이 아침부터 길게 줄을 늘어섰다. 이날은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들의 투표도 가능해졌다. 도봉구 도봉동의 한 투표소에서 자녀들과 함께 줄을 선 30대 남성은 "휴일이기도 해서 애들과 같이 투표하러 왔다"며 "다음 정부에선 세금을 덜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봉구 쌍문동의 투표소에선 "아빠, OOO 찍는 거 아니야? 아 왜 찍어!"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등 가족이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보였다.
유권자들은 정쟁 대신 어려워진 민생에 관심을 갖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마포구 합정동에서 투표를 마친 조모씨(30대·여)는 "제발 분열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종로구 교남동 투표소의 80대 남성은 "없는 서민들 잘 살게 했으면 좋겠다. 코로나19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20대 대선 사전투표는 3월4~5일 이틀 동안 진행됐다.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응암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 투표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긴 줄이 생겼다. (사진=뉴스토마토)
공표금지 기간 직전 여론조사마저도 오차범위 내 접전인 상황에서 여야 유력주자들을 향한 강한 비호감은 상대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한 투표 열기로 이어졌다. 대선을 불과 엿새 앞두고 이뤄진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여권 지지층에게는 위기감을, 야권 지지층에게는 확실한 정권교체를 심어주며 투표장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영등포 여의도동에서 투표를 하고 나온 한 부부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너, 투표 안 하냐"라며 자신의 지지후보에게 한 표 행사를 독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광진구 자양동에서 만난 류모씨(50대)는 " 20~3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며 "다들 선거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사전투표에서부터 열기가 피부로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4~5일 치러진 20대 사전투표율은 36.9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사전투표엔 1632만3602명이 참여했다. 사전투표가 전국 단위 선거에 처음 적용된 2014년 지방선거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다. 2017년 치러진 19대 사전투표율(26.06%)보다 무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지역별로는 전남(51.45%)이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으며, 경기(33.65%)가 가장 낮았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은 37.23%로 전국 평균을 약간 웃돌았다. 호남의 높은 투표율을 두고 민주당은 "배신감을 느낀 안철수 지지층의 응징"으로, 국민의힘은 "호남의 반란"으로 저마다 유리하게 해석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호남 득표율을 20%에서 25%로, 다시 30%로 재상향 조정한 바 있다.
20대 대선 사전투표는 3월4~5일 이틀 동안 진행됐다. 5일엔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한 별도 기표소도 마련됐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의 한 투표소에선 확진자·격리자를 위한 기표소가 방치됐다가 바람에 넘어져 한참 뒤 복구됐다. 사진 왼쪽은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기표소가 바람에 넘어진 모습. 오른쪽은 복구된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다만 이번 사전투표에선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의 투표 관리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이들은 방역당국이 외출을 허용한 5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일반 유권자와 동선이 분리된 임시기표소에서 투표를 진행했으나, 현장에선 제대로 된 준비가 이뤄지지 않아 갖가지 혼란이 빚어졌다. 신분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별도의 투표함이 없어 현장에서 선거 사무원이 종이 박스나 플라스틱 용기, 쇼핑백에 기표용지를 수거해 대리 전달하는 일이 발생해 유권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양천구 목동의 한 투표소에선 확진자·격리자 기표소가 바람에 넘어졌다가 한참 뒤 복구됐다. 기표소를 관리하는 요원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투표소에선 확진자·격리자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시됐다. 이곳에서 만난 우모씨(30대·여)는 "확진자들이 아무 통제 없이 그 부근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비감염자와 사회적 거리두기도 안 지켜졌고, 처음이라 매뉴얼이 부족한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일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높은 참여열기와 투표관리인력 및 투표소 시설의 제약 등으로 인하여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 관리에 미흡함이 있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드러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면밀히 검토하여 선거일에는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다만 일부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 등에 대해선 "이번에 실시한 임시기표소 투표방법은 법과 규정에 따른 것이며, 모든 과정에 정당 추천 참관인의 참관을 보장하여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병호 기자, 고은하·유근윤·이승재·전연주 인턴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