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1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청와대에서 배석자 없이 오찬을 겸해 단독 회동을 진행한다. 윤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건의할 예정으로, 문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관건이다. 이날 회동에서는 이 전 대통령 사면 외에도 코로나19 대응과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위협 등 국정 전반에 대한 논의가 오갈 것으로 보인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1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두 사람의 회동을 전하며 "오찬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배석자 없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두 분 독대로 배석자 없이 허심탄회하게 격의 없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찾는 것은 지난 2020년 6월 검찰총장 자격으로 반부패정책협의회 참석 이후 21개월 만이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에게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청할 계획이다. 김은혜 대변인은 "윤 당선인은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견지했다"며 "이번 만남을 계기로 국민 화합의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 80세인 고령의 전직 대통령이 오랜 기간 수감돼 있는 것이 국민들 보기에 좋지 않고 국민통합에도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사면 건의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앞서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신년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고려했다는 게 당시 청와대 설명이었다.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사면하는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국민 여론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당선인과의 첫 회동, 첫 요청을 거절하는 것도 문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이다.
지난 2021년 2월 동부구치소 수감 도중 기저질환 치료를 위해 50여일 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어떻게 될 지 예상할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께서 참모들과 상의할 문제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때처럼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 그 논의에 대해 어떠한 기류도 없다"며 "결과적으로 사면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다 있기 때문에 논의를 하나마나 뻔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면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다"며 "윤 당선자께서 건의하면 문 대통령이 듣고 참고하고 어떤 결정을 하든지, 그것은 오로지 대통령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당의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한 발 뒤로 뺐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강원 동해시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에 마련된 산불피해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에서 피해 주민을 위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여기서 말씀을 드려야 되나"라며 말을 아꼈다. 박성준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은 "이 전 대통령 사면 건의는 대통령과 당선인이 논의하는 내용이라서 그 결과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오섭 대변인 역시 "사면은 대통령과 당선인이 결정하는 거라 당이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앞서 이재명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과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 전 대통령 사면 논의가 이번 회동을 계기로 공론화되면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여부도 함께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이 최종 결정된다면 오는 5월 석가탄신일 특별사면 대상에 이 전 대통령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을 찾아 상점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외에도 코로나19 방역 대책과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보상 지원 방안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윤 당선인은 코로나19 피해보상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문 대통령에게 임기 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건의할 것으로 보인다. 또 오는 4월 태양절을 맞아 북한의 ICBM 발사 가능성이 예측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문제와 함께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공급망 등의 현안도 주된 의제로 다뤄질 수 있다.
아울러 오는 31일 퇴임을 앞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 정권교체기 인사 관련 논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당선인 측에서 대선 뒤 청와대 측에 인사 협의를 요청했다'는 보도에 대해 "분명한 것은 5월9일까지는 문재인정부 임기이고, 임기 내에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때 대통령과 검찰총장 관계였던 두 사람의 만남에 정치권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