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김오수 검찰총장이 1년 이상 남은 임기를 모두 채울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본인의 뜻대로 완주할 가능성이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속적으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정권에 의해 밀려나는 첫 검찰총장이 될 수도 있다. 임기를 남기고 정권이 바뀐 검찰총장 중 공개적으로 사퇴 압력을 받고 물러난 사례는 없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임기 중 정권이 교체된 검찰총장은 김두희·김태정·김각영·임채진·김수남 등 총 5명이다. 이들은 새 정부의 신뢰와 검찰 내부의 지지 여부 등에 따라 각각 행로가 갈렸다.
노태우 정부가 임명했던 김두희 전 검찰총장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법무부 장관에 올랐고 1994년말까지 2년 가까이 장관직을 수행했다. 새 정부가 검찰과 법무부의 요직을 거치면서 쌓인 수사·법무행정 경험과 능력을 신뢰했다는 의미다. 김두희 전 총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 등을 역임했다. 업무추진 능력과 친화력이 뛰어나 불과 3개월만에 총장에서 장관으로 이동한 것을 검찰 내부에서 아쉬워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후배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선임한 김태정 전 검찰총장은 다음 정권인 김대중 정부에서 1년 이상 검찰을 이끌다가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김태정 전 총장은 이른바 '검란·항명파동' 등으로 불리는 악재가 있었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권 초기 사정을 지휘한 공을 인정받았다. 다만, 김 전 총장은 '고급 옷로비 사건',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으로 장관 취임 15일만에 사퇴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 총장이 두 사람 같은 길을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 나서서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법무부 장관은 고사하고 검찰총장으로서의 임기를 채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신뢰가 없고 검찰을 뜻대로 지휘할 수 없게 된다면 김각영 전 검찰총장처럼 새 정부 초기에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각영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었지만 '검사와의 대화'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 자리에서 검찰 수뇌부를 반개혁 집단으로 몰아붙인 게 이유로 꼽혔다.
당시 김각영 총장은 내부 신망이 두텁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부의 지지도 약해지자 설 자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중앙지검장 등 주요 인사가 '윤석열 사단'으로 채워지면 김 총장은 김각영 총장과 마찬가지로 위에서는 눈총을 받고 아래는 제대로 이끌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빠질 것으로 관측된다. '고립무원' 끝 사퇴 수순이다.
김수남 전 검찰 총장과 같은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 김수남 총장은 제19대 대선 당시 일부 후보와 정당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공개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이를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다음 날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수사도 마무리됐고 어느 정도 소임을 마쳤다고 생각한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김수남 총장의 사임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과 검찰 조직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란 해석이 나왔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총장도)새 정부가 출범하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본다"며 "대장동 등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건들은 가능한 마무리를 짓고 나오는 게 여러모로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같이 자신을 임명한 전 정권을 수사하는 길을 가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임 전 총장은 제17대 대선 정국에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의혹' 수사를 지휘해 무혐의 처분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유임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게 검찰 안팎의 평가다. 이명박 정권에서 여러 차례 교체설이 있었지만 자리를 지키다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사직서를 냈다.
김 총장이 자리를 지킨다면 '월성 원전'과 '대장동 사건' 수사를 지휘해야 한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월성 원전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가 백 전 장관에 대한 업무상배임 교사 혐의는 여전히 대전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뀐 뒤 문재인 대통령까지 겨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업무상배임 교사 혐의를 타고 청와대까지 수사가 뻗어나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것이 곧 새정부의 '보복수사'로 연결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장동 사건은 문 대통령과는 관계가 없지만 현 집권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을 재판에 넘겼지만 이 전 지사에 대한 조사는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