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서울교통공사, '소수자 감성'부터 키워라

입력 : 2022-03-25 오전 6:00:00
얼마 전 서울교통공사의 내부 문건이 드러나며 공사의 시민 갈라치기 의혹이 증폭됐다. 이 문건에는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을 상대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이 담겨있었다.
 
해당 문건을 본 장애인단체는 들끓었다. 다음날 그들은 서울교통공사 앞에 몰려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현장에서 목격한 그들은 말 그대로 울분을 토했다. 공사는 개인 직원의 일탈이라고 일축했지만, 장애인 단체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문건이 지금껏 겪은 일의 증거가 될 뿐이라며 공사에 의해 그들이 왜곡되게 전달된 순간을 증언했다.
 
실제 기자가 찾았던 '서울역 공항철도' 시위 현장에서는 장애인 단체가 고의로 열차를 지연시킨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지하철 역사 내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열차가 지연 운행되고 있어 죄송하다'는 방송이 흘렀다. 공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모여 방송을 계속 틀어야 한다고 지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모 언론사 기자는 공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공사가 보도자료로 사실을 조작하고 장애인 단체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지하철 지연 등에 따라 시민들의 분노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기자가 시위 현장에 나갔던 날, 기자의 지인은 장애인 단체를 향한 욕설이 가득 섞인 단체 카톡방 메시지를 기자에게 캡처해 보내줬다. 이날 단체의 시위는 시민들이 가장 마음이 바쁜 퇴근길이었다. 다른날, 누군가 단체가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 테러 행위를 하거나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는 사이버 공격을 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공사 내부 직원이 불편 해소 방안보다, 시민들 간 갈등을 조장하는 방법을 탐구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위가 시작된 이유가 있다면, 끝을 낼 명분도 있어야 한다. 단체 관계자에게 "시민들에게 미안함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도 "미안하기는 하다"고 대답했지만, 말끝을 흐렸다. 정치권도, 서울시와 교통공사도 그들의 요구에 명확히 응답하지 않은 탓이다.
 
문건에 따르면 공사는 불만을 제기하는 장애인단체의 목소리를 지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문건 내용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공사의 '소수자 감수성'이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인권위는 공사에 소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고를 내렸는데, 공사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쪽으로 나아갔다고 최근 밝혔다. 공사는 즉각 수정의 뜻을 나타냈지만, 이미 소수자에 대한 내부 거름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드러났다.
 
공사의 주장대로 발각된 내부 문건이 한 개인의 일탈이라 치더라도, 그가 당당하게 문건을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사 내 소수자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탓이 아닐까?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으로 서울시민의 혈세를 지원받고 있다. 장애인 등 소수자도 서울시의 시민이다. 다수는 물론 소수 시민의 이동권에도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공사 내 소수자 감수성을 키우고, 내부 필터링을 작동시켜야 한다. 공사가 '시민 간 교묘한 갈라치기를 조장했다'는 오명을 벗고, 내부 문건이 개인 직원 일탈임을 증명하려면 공사는 다르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조승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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