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서태지 음악은 타협 없는 모어앤뉴”

서태지 30주년 특별 기획 시리즈 #6
서태지밴드 베이시스트 강준형 인터뷰
3차 오디션까지 진행 뒤 8집 연주자 발탁
“서태지, 음악 작업 땐 개인 삶 희생 각오된 구도자”

입력 : 2022-03-29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서태지 데뷔 30주년을 맞아, '권익도의 밴드유랑'은 그간 깊이 다뤄지지 않고 오히려 잘 다뤄지지 않아 간과돼 왔던 부분들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서태지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미쳐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의미를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자세히 들여보는 내용들이 될 것이다. 평소 서태지가 추구해온 음악적 정신이 ‘큰 울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지난 시간 그것을 가슴으로 느껴왔다면, 이제는 머리로써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며 세상과 호흡해보고자 한다. >> 참고기사, (권익도의 밴드유랑)“넬 세상 밖으로 꺼내준 서태지 형”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뮤지션 서태지. 사진=서태지컴퍼니·서태지아카이브
 
서태지 팬들은 뮤직비디오 속 그를 ‘킬러 강’이라 부른다. 스모키 화장과 시크한 표정,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 그리고... 각진 퍼포먼스만큼이나 ‘칼박’으로 끊는 베이스 리듬 연타.
 
그러나 통화음 너머로는 부산 억양의 정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위의 넉넉한 그 말투, 그대로다. 28일 서태지밴드의 베이시스트 강준형을 전화와 서면으로 만나봤다.
 
“오디션 보러 가던 순간까지도 몰랐습니다. 아직도 참 신기합니다.”
 
그는 2006년부터 ‘에이첼 인 어 스토리(A'ccel In A Stroy)’로 활동했다. 당시 우연히 같은 라이브 공연장에서 만난 서태지밴드 기타리스트 탑의 추천으로 베이시스트 오디션을 제안 받았다. 커피숍 점장 일을 병행하던 때라, 매장을 마무리하고 밤새워 오디션 곡들을 연습했다. 며칠 뒤 날짜와 장소가 떨어졌다. 서울 논현동 서태지컴퍼니 스튜디오. 2008년 여름의 일이다.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 속 강준형. 사진=서태지컴퍼니 공식 유튜브
 
직원 안내로 들어간 작은 방에는 컴퓨터 1대와 촬영용 카메라 1대가 있었다. 오디션 곡 ‘인터넷 전쟁’을 원테이크로 레코딩하고, 끝나면 카메라 앞에서 액션과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녹화하는 두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방에서 카메라 쳐다보며 혼자 춤추며 연주하는 기분이란, 민망 그 자체였습니다. 하하. 간주 부분 때 원곡에 없는 슬랩 솔로를 즉흥 연주했는데 후에 태지 형 말로는 가장 인상깊었다고 해주셨습니다.”
 
1차 통과를 받고는 며칠 뒤 2차 오디션이 이어졌다. 서태지밴드 드러머 최현진과 ‘인터넷 전쟁’, ‘라이브 와이어’ 합주를 촬영하는 미션. 당시 장기간 커피숍 업무로 다리가 아픈 상태에서 퍼포먼스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그는 아예 ‘떨어졌다’ 생각했다고. 그렇게 ‘안됐겠구나’ 하고 있는데 며칠 뒤 깜짝 놀랄 연락이 왔다.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고.
 
대망의 3차 오디션 날. 2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곡 ‘해피 엔드’ 미션을 전력을 다해 마치자마자, 문이 열리고 환하게 웃는 서태지가 들어왔다. “같이 합시다.”
 
“사람 주변에 ‘광채’가 느껴질 수 있구나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서포트 멤버로라도 함께 할 수 있을까’ 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거든요.”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활동 당시 서태지밴드 베이시스트 강준형. 사진=서태지컴퍼니
 
합격 이후 스스로 극강의 연주 훈련을 자처했다. ‘아침 기상-곡 카피-암기-점심식사-합주-카피-암기-저녁식사-카피-암기-....’ 패턴. 한 달 반에 걸쳐 서태지 8집 ‘아토모스(Atomos)’ 수록곡을 포함해 ‘2008 ETPFEST’와 컴백 공연까지 총 25곡을 익혀야 하는 상황. “말 그대로 연습실에서 그냥 살았습니다. 진짜 ‘뇌 과부하’가 무엇인지 그때 제대로 느꼈죠. ‘셀프 감금’이란 말이 적당하겠네요.”
 
시나위 베이시스트 출신인 서태지의 지휘는 어땠을까. 당시 방향은 딱 하나였다고 한다. 원곡에 충실할 것. “코드 안에서 자유롭게 칠 수 있으면 편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알던 곡이라도 원곡 그대로 카피하고 외워야 하니 모든 곡이 저에게는 신곡이었죠.”
 
서태지의 음악 제작 과정을 하나의 건물 시공으로 친다면, 그가 맡은 베이스 파트는 기초공사를 하고 토대를 세우는 역할과도 같다. 당시 그는 서태지가 직접 녹음한 8집의 베이스 트랙들만 받아 연습했다. 보컬 파트는 녹음 되지 않은 버전이라, 곡의 어느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 상황을 헤쳐 가야했다고.
 
“‘휴먼드림’은 진짜 ‘블랙홀’ 같은 음악이었습니다. ‘컴백 전 이 곡을 외울 수 있을까’. 진짜 너무 걱정돼서 불안해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네요.” “오히려 플레이적인 면은 어려운 부분이 없었습니다. 퓨전 재즈나 펑키 한 베이스 라인 꽤 있어서 재미있게 연주했습니다.”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활동 당시 서태지밴드 베이시스트 강준형. 사진=서태지컴퍼니
 
2014년 9집 음반 ‘콰이어트 나이트(Queit Night)’ 때는 베이스 파트 편곡에 서태지와 공동 참여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서태지가 코드의 근음 위주 파일을 먼저 보내주면, 그가 느낌대로 여러 라인을 녹음해 보냈다. 다시 ‘몇 소절 몇 마디에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 연락이 오면 그에 맞춰 여러 플레이를 녹음해 보내는 식으로 이뤄졌다. “보내드린 많은 라인들을 태지 형이 편집해 곡에 사용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태지 형이 만든 곡의 골격을 유지하되, 제 연주 스타일이 잘 표현되게 작업됐던 것 같습니다.”
 
테크닉적으로는 ‘크리스말로윈’이 제일 난이도는 있는 편이지만, 그는 “함께 만든 베이스 라인이기에 제일 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연주적으로는 어떤 곡이든 어렵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시간 내에 외워지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웃었다.
 
25주년 기념 공연 때 ‘아이들’ 시절의 곡부터 9집까지 라이브로 구현한 그는 “한 뮤지션의 성장과정이 음반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기에 모든 태지 형의 음악은 연결된 느낌을 준다”면서도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서는 그 자연스러운 연결을 거부하려는 뮤지션의 과정이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미 이전 앨범으로 증명된 성공 방식을 과감히 포맷하고 구성적, 사운드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들. 서태지라는 뮤지션의 유일무이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앨범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확신하고요.”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활동 당시 서태지밴드 베이시스트 강준형. 사진=서태지컴퍼니
 
그가 지켜본 음악인 서태지는 “적당한 타협 없이 ‘모어 앤 뉴(More and New)’를 추구”하며 “그것을 위해선 개인적 삶을 희생할 각오도 된 구도자 같은 모습”이다. “‘이 정도면 괜찮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 ‘더 새로운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시도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소름 끼칠 때가 많습니다. 단순히 즐겁게 음악을 하자던 저의 음악적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인간 서태지에 대해 말할 정도로 사적 교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는 “다만 한 가지 에피소드로 대체할까 한다”며 말을 이었다.
 
8집 활동 중 개인 사정으로 힘들었던 때. 합주가 끝나고 강준형은 힘든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개인 연습실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방문 앞에 건프라 박스 몇 개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위에 붙은 포스트잇. “선물입니다. 힘내세요.”
 
“제게 인간 태지 형이라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지요. 사람에 대한 정과 그 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순수해서 생각할 때마다 웃음 짓게 됩니다.”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전국 투어 때 강준형은 'Hot Hand'라는 이펙터를 써서 베이스가 얼마나 다이나믹한 악기인지 보여주는 실험에도 나섰다. 그는 "송신기(반지)와 수신기가 한 쌍으로 재미있는 와블 사운드(Wobble Sound)를 만들어 재밌는 소리를 낸다. 실제 앨범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라이브 시에 재미있는 효과를 주기 위해 사용했었다"고 설명해줬다. 사진=서태지컴퍼니
 
서태지밴드 휴식기엔 헤비메탈 밴드 디아블로에서도 활동했던 그는 지금 EDM 계열의 개인 음반 작업 준비에 한창이다. 좋아하는 음악가로는 세계적인 록 밴드 인큐버스의 베이시스트였던 알렉스 카투니크(더크 랜스)나 세계적인 베이스 연주자 빅터 우튼을 꼽았다. “사실 스쿨밴드 아마추어 베이시스트의 연주에서도 배울 점은 존재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보고 듣는 모든 연주자, 해보지 못한 것들을 가진 분들은 다 롤 모델이라 여기는 편입니다.”
 
한국 대중음악과 문화에 미친 서태지 매니아(팬덤)의 영향을 그는 마지막 인사로 갈음했다.
 
“4집 ‘시대유감’ 사건으로 시작된 사전 심의제 폐지, ‘컴백홈 패러디’ 사건으로 시작된 저작권법에 대한 진지한 항의, 사전녹화제... 많은 음악계 폐단들에 대해 서태지 팬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어왔죠. 이러한 활동들이 지금, 그리고 미래의 제약 없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음악 기틀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멋진 팬들이죠.”
 
서태지 메시지가 적힌 사인 시디들. "최고의 에이스로 임명.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요!", "서태지밴드 Forever"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다. 사진=강준형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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