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낙태죄가 폐지된지 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임신중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과 제도가 여전히 낙태죄 폐지 이전에 머무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의 혼선은 물론 여성들의 신체 자기결정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4월11일,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형법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관련 법 제정은 2020년 12월31일까지 마무리돼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후속 입법은 답보 상태로 여전히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은 법과 제도의 실질적 보호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여성계는 임신중지를 의료보험 체계에 편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임신중지가 적절한 시기에 이뤄지지 않거나, 불법 약물을 복용하는 등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의 임신중단을 경험한 졔졔(가명)는 지난 10일 낙태죄폐지1주년 집회에서 “2013년 첫 임신중지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120만원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당시 최저 임금을 고려했을 때 지금은 230만원으로 책정되는 가격”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누군가는 돈이 없어 안전하지 않는 의료 서비스를 택하거나 적절한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식약처의 ‘미프진’ 허가가 조속히 시행돼야 이 같은 문제를 줄일수 있다고 했다. 미프진은 먹는 임신중지약으로 수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2005년부터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미프진 구입이 불법이다. 이때문에 일부 여성들은 암거래로 임신중지약물을 구입해 복용하기도 한다.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수십만원의 돈을 내고 임신중지를 위한 약을 먹었지만, 결국 실패했고 건강상 위험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임신중지를 보장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7월 ‘현대약품’이 미프진 도입을 시도했다. 당초 이달까지 식약처의 승인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지만, 식약처가 현대약품에 보완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승인을 미루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언제쯤 심사가 끝나고 도입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의 활동가 이동근 약사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미프진 도입이 지지부진한 까닭을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입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약사는 “산부인과 의사회는 정부의 전문가 자문회의에 참여하는 등 공청회 과정에서도 낙태 허용 주수를 정부 원안보다 줄어든 8주로 만든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산부인과 의사회는 다른 약물에 대해서는 식약처 승인을 재촉하지만, 미프진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데 이는 산부인과의사회가 미프진의 도입 자체를 막으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반면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미프진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해당 약물에 대한 복용이 허가된 법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낙태죄 폐지 이후 대체 입법 등 관련 법률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후속 이법이 이뤄져야 마무리가 되는 건데 국회가 사실 의무를 방기했다고 밖에 볼수 없다”며 “이 때문에 실무에서 혼선이 계속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서영 기획팀장도 “대체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진지 벌써 3년”이라고 지적하고 “차기 정권과 국회는 임신중지 대체입법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공적 의료체계 내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와 보건단체 등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이 1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