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정국이 다시 극한대치로 전환했다. 국민의힘이 사흘 전 민주당과 합의한 검찰개혁 중재안을 전면 파기하면서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원내사령탑 취임 후 첫 소득을 스스로 번복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이준석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까지 여야 합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인 권 원내대표가 '윤심'(尹心)을 오판했다는 지적과 함께 "한동훈이 진정한 윤핵관"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권 원내대표로서는 자존심을 단단히 구기게 됐다.
권성동, 1시간반 만에 "합의 지켜야"→"재논의 필요"
국민의힘은 25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박병석 국회의장이 마련한 검찰개혁 중재안 합의에 관해 재논의를 결정했다. 사실상의 파기 선언이었다. 앞서 검찰개혁 법안을 놓고 강대강으로 대치하던 여야는 지난 22일 박병석 의장이 중재안과 함께 "수용하는 정당 의견대로 국회를 운영하겠다"고 압박하자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이를 수용키로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24일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합의안 재검토를 시사했고, 사흘 만에 합의를 번복했다. 민주당은 발칵 뒤집혔고, 정국은 다시 극한대치로 빠졌다.
25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사진 가운데)가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합의 번복 과정을 돌이켜 보면, 윤심에 따른 권력구도가 핵심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7시20분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과의 인터뷰에서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만큼 합의 사항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1시간30분 뒤 최고위에선 "검찰개혁에 대해 여야가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를 놓고 윤심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최고위가 열리기 전 윤 당선인은 배현진 대변인을 통해 "정치권 전체가 헌법가치 수호와 국민의 삶을 지키는 방안이 무엇일까를 깊게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달라"는 입장을 내놨다. 여야 간 재논의를 촉구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권 원내대표가 윤 당선인의 입장 표명 후 발언을 뒤집은 건 윤심을 오판했다고 자인한 꼴이 됐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준석 대표의 검찰개혁 중재안 합의 재검토 입장에 윤 당선인의 의중이 녹아 있다고 해석하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윤 당선인 입장에선 권 원내대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니까 믿고 맡긴 것 같다"며 "윤 당선인 입장에서 (중재안은)도저히 수용할 수 없고, 당선인의 도덕적 정통성을 완전히 허무는 것"이라고 했다. 하 의원은 특히 "(결국)권 원내대표의 입지도 상당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권성동 여야 합의에 안철수·한동훈까지 비토
여야 합의 직후 안철수 인수위원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부정적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안 위원장은 24일 인수위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은 꼭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견제와 균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위원장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법이 통과하면 범죄자들이 숨 쉴 틈을 줘서 많은 국민들이 피해 입을까 우려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론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25일 오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방문한 뒤 떠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 지명 때부터 검찰개혁 법안에 대해 "반드시 통과를 저지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2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여야의 검찰개혁 중재안 합의를 비판, "사회적 합의 없이 급하게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어 "면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 없이 급하게 추가 입법이 되면 문제점들이 심각하게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 대표는 한 후보자와 통화하며 윤심을 읽은 뒤 중재안 합의 재검토 입장을 내놨다. 권 원내대표와의 불편한 관계를 감안하면 의원총회까지 거친 원내 현안에 대해 당대표가 제동을 거는 것은 극한충돌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윤심이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면서 권 원내대표는 백기를 들어야 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중재안 합의 파기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은 윤 당선인과 한 후보자 말 한마디에 의원총회가 무력화됐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민의힘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층의 표심도 의식해야 하고 윤 당선인의 의중도 봐야 하고 복잡한 상황이 맞물렸다"며 "권 원내대표가 타격을 받겠지만, 이번 일만으로 판단하는 건 성급할 수 있다"고 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