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9월20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백두산 천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서 나란히 손을 잡은 모습은 국민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예고되면서 한반도 종전선언과, 한 발 더 나아가 북미수교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이는 곧 '평화'였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북미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 등의 논의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북한은 대화의 문을 잠궜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카드로 꺼내든 한반도 종전선언도 끝내 좌절됐다.
문 대통령이 임기 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남북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축이었다. 지난 5년간 민족 간 정전 상태를 끝낼 종전선언 그리고 평화협정, 이어 항구적 평화체제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축에 전력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기에 북미수교도 구상에 담았다. 물론 전제는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였다. 때마침 트럼프 미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노리고 문 대통령이 잡은 운전대를 지지했다.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전쟁 위기까지 엄습했던 한반도의 긴장을 크게 완화시켰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같은 해 4월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상호 적대행위 중단, 군사적 긴장 상태의 완화, 남북한 불가침과 군비 축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 평화로 가기 위한 주요 방안들이 판문점 선언문에 담겼다. 4·27 1차 남북 정상회담과 5·26 2차 정상회담은 사상 첫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했다. 문 대통령은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간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이른바 '운전자론'이었다. 그 결과 같은 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덜어냈다.
이는 다시 9·19 평양 3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정상화, 이산가족 화상상봉 추진, 미국 상응 조치에 따른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2032년 하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한국전쟁 유해 공동 발굴과 남북공동경비구역(JSA) 내 완전한 비무장화 등을 합의했다. 특히 핵 폐기 선언은 북한의 진전된 비핵화 조치에 대한 의지가 담겼다는 점에서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성과를 기대케 했다. 문 대통령은 능라도 5·1경기장에 모인 15만명의 평양 시민들에게 직접 한반도 비핵화 연설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남북관계에서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라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지난 2018년 9월20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장에 입장한 뒤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2019년 2월27~28일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제재 완화 맞교환을 타진했던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며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같은 해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졌지만 북미 정상 간의 진전은 없었다. 오히려 2020년 6월 북한이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연락채널 차단,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은 다시 고조됐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와 '외교적 관여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지만 북한은 '이중적 잣대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며 남북미 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 꺼져가는 대화의 불씨를 살리려는 취지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카드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통해 북한을 다시 무대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미 정상이 한 데 모여 종전선언도 계획했지만 미중 간 갈등 격화와 이에 따른 미국의 베이징올림픽 보이콧으로 물거품이 됐다.
북한은 올해 들어 14번째 무력 시위를 이어가며 긴장 수위를 높였다. 급기야 지난 3월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면서 2017년 11월 '화성-15형' ICBM을 시험발사한 지 4년4개월 만에 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며 ‘레드라인'을 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언제든지 핵을 쓸 수 있다"며 '핵 선제타격' 발언까지 내놨다. 남측도 정권이 교체되며 보수정부 등장이 예고됐다. 그렇게 한반도 평화시계는 모래시계가 되면서 5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2017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그런 측면에서 나름 남북관계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면서도 "2019년 북미 간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고, 그 이후에 남북관계를 복원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상당한 장애 요인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한반도에서의 평화 관리, 군사적 긴장 해소라는 측면은 상당히 진전된 성과를 거뒀다고 봐야 한다"며 "다만 핵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노력은 했지만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5월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정부의 대미, 대중 외교는 대북 정책과 연동돼 이뤄졌다. 동시에 미중 갈등 속에 균형외교를 통해 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삼으면서도 중국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미중의 패권경쟁 구도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문재인정부의 이러한 외교 전략은 전략적 모호로 읽혔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나름 제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그 결과 사드 배치로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박근혜정부 때와 달리 한중 간 심각한 갈등이 표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에 나서면서 한미동맹이 약화됐다는 보수진영의 공격도 낳았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미관계가 겉으로야 항상 좋다지만 기본적으로 바이든 정부 전까지 한미 간에 2+2 회의(외교·국방 장관회의)가 없었다는 것은 동맹에 대한 양국의 공통된 전략, 목적이 설정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문재인정부는 북한을 위협 대상이 아닌 대화 파트너로 봤고, 미국은 한미동맹이 중국 견제를 위해 사용되길 원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이라는 두 위협 대상에서 한미 모두가 공통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맹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고, 이것은 상당히 동맹이 망가졌다는 것"이라며 "때문에 양국이 자기가 원하는 이익만 추구하다가, 5년이 끝나버렸다"고 평가했다.
반면 국립외교원장 출신의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한미동맹은 적어도 더 약화되거나, 나빠지지는 않았다"며 "(한미관계 관련해서는)새 정부가 문재인정부를 계승하는 게 훨씬 더 올바른 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작년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은 보수, 진보 진영 모두 최고의 공동성명서로 평가한다"며 "북한 문제를 미국이 인정하고, 그리고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구성된, 미국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도 교본이라고 할 정도"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재인정부 임기 동안 한일관계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양국 정부는 역사 인식을 놓고 갈등을 거듭했다. 독도 영유권, 역사교과서 문제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2018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양국 갈등을 증폭시켰다. 판결 이후 일본이 한국 수출 규제 등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하자 한국은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통보 등으로 대응했다. 정부에서 일본을 향해 대화의 손짓을 해도, 양국 간 갈등 현안을 둘러싼 일본의 대응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속 한국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를 이루는 등 등 긍정적 면도 있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일본이 수출 규제 등 경제적인 보복을 한 것인데,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본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던 한국의 소부장 부문이 오히려 개선됐다"며 "수출입의 다변화가 일어났고, 소부장 국산화가 굉장히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9년 12월24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국 청두 샹그릴라 호텔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