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초대석)문홍규 천문연 그룹장 "우주는 미래…산업 육성 철학부터 챙겨야"

어린 시절부터 우주 꿈꾸던 중견 연구자…'한국의 나사' 위해 직언
"항공우주청 사천 설립은 정치·지역 논리 작용 결과…본말 전도"
"해외 7개국, 모두 수도권에 본부 위치…항공·우주 분리도 고려할 필요"

입력 : 2022-05-10 오전 6:05:18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대전이 중요한 것도, 사천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우주에 왜 가야 하는지, 우리의 후속 세대들에게 우주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것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본말이 전도됐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우주탐사그룹장(사진)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항공우주청을 사천에 설립한다는 것과 관련한 최근 논란에 대해 이 같이 일갈했다. 우주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비전과 철학을 우선 설정하고 그에 맞는 조직 구성이 뒤따라야 하는데, 현실은 지역 안배를 우선 고려하고 그 밖의 사항들을 짜맞추기 식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아쉬움에서다. 
 
 
문 그룹장은 이달 초부터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향해 매일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수위가 해단한 이후에는 과학기술비서관으로 수신인이 변경됐을 뿐, 이날까지 벌써 열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이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의 나사(NASA)'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지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문 그룹장은 6살때부터 지구 밖 우주를 궁금해하고 동경해왔다. 학창시절 글짓기를 해도, 그림을 그려도 그의 관심사는 모두 우주에 있었다. 초등 5~6학년 때 한국천문연구원의 전신인 국립천문대를 찾아가 강연과 공개 관측행사에 참여하면서 우주를 꿈꿔오던 소년은 현재는 29년째 천문연에 근무하는 중견 연구자가 됐다. 그런 그에게 '한국의 나사'가 될 우주 전담기구를 만들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은 기대를 키우기 충분했다.  
 
하지만 신설되는 항공우주청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실망감이 커졌다. '개인 자격'을 앞세워 윤석열정부가 그리는 우주 정책의 오류를 조목조목 꼬집게 된 배경이다. 
 
문 그룹장은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우주 강국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며 항공우주청의 잘못된 방향성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우주경제에서 위성과 발사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불과하다. 통신·위성자료 서비스, 지상국 서비스, 정부 발주의 공공우주 등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천에 제조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곤 하지만, 중요도로 보자면 우주 분야만 보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도 채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더 많은 매출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우주 산업과 미래 가능성은 대전을 비롯한 타 지역에 집결해있다"고 강조했다. 
 
문 그룹장이 말하는 '부가가치'는 국가 미래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것들이다. 우주바이오가 대표적이다. 문 그룹장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지금까지 약 3000회의 과학실험이 진행됐다"며 "그 중 1200건 이상이 바이오 실험"이라고 소개했다. ISS에서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상에서 하기 어려운 실험들을 제약없이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등 굴지의 제약사들이 2016년부터 상업 실험을 진행 중이고 민간 기술 기업들도 나사 등의 후원을 받아 유수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테크샷이란 기업이 3D 프린터로 심장근육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장기의 조직이 층층이 잘 쌓인다는 점을 활용했다. 
 
달이나 화성으로의 이주를 위해 연구하는 식용곤충,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해 식물을 재배하는 농법 등도 결국 우주 시대를 대비하는 동시에 지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는 "현재 우리의 우주 정책은 현재 수요는 물론 미래 글로벌 트렌드가 어떤지에 대한 아무런 스터디 없이 결정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문 그룹장은 "우주 부문은 범부처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에 따르면 현재에도 우주와 밀접한 업무를 관장하는 국내 부처가 국토부, 국방부,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10여개가 넘고, 앞으로는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될 전망이다. 그는 "우주는 국가 수반의 관심사여야 한다"며 "범부처로 묶으려면 관련 정부 중앙 부처와도 지리적으로 가까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7개 국가의 우주 전담 기관 본청이 수도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도 덧붙였다. 사천 입지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으로 다시 한번 귀결됐다. 
 
문 그룹장은 신규 조직에 항공과 우주 분야가 함께 포함되는 것도 재고할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연방항공청(FAA)은 주로 항공기의 노선 관리나 표준 설정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이 부분을 국토부가 이미 담당하고 있다. 또한 나사에 포함된 항공연구개발 기능에 대한 예산은 전체의 4%에 그치고, 일본의 항공우주국(JAXA), 독일 항공우주국(DLR) 등도 모두 항공 부문이 우주에 비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문 그룹장은 "이미 국가적으로 체계를 갖춘 항공 분야보다는 우주 분야를 육성하는 게 초점이 돼야 한다"며 "사천은 항공 중심의 비중이 큰데, 아무런 철학과 목표 없이 물리적으로 결합할 경우에는 이도 저도 아닌 '비빔밥'이 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협소한 인력풀도 우주 산업 발전의 장애물로 꼽혔다.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우주 전담 기관들은 구매, 예산, 인사 등 기본적인 지원 업무를 제외한 인력들이 대부분 박사급 엔지니어들인데, 한국은 절대적인 인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주 정책에 대한 철학 부재에 기인하는 것으로 '독립 기관'의 필요성으로 연결됐다. 문 그룹장은 "통신위성에 들어갈 부품을 군통신위성에 넣으면 군수용이 되는 것"이라며 "기술은 업체에서 가지고 있고 원천 기술은 출연연과 대학에서 개발을 하더라도 이를 엮어줄 수 있는 통합적인 정책 기능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과학, 공학 R&D 분야를 망라한 범부처 통합기능을 갖춘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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