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곽푸른하늘, 초록 선율의 ‘소리 숲’으로

6년 만에 정규 3집 ‘Nearly (T)here’
남산 산책 인터뷰…“음악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

입력 : 2022-05-24 오후 4:31:08
6년 만에 정규 3집 ‘Nearly (T)here’로 돌아온 싱어송라이터 곽푸른하늘. 사진=씨티알싸운드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푸른 하늘 솜사탕 같은 구름이 둥실 떠가고 초록이 고개를 내민다. “제법 덥네요.” 나란히 걷던 그가 맑게 웃는다. 조곤조곤한 말투가 시종 너울거린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나일론 기타의 분산화음처럼. “근래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왜 나는 뭔가를 해도 항상 처음 하는 것 같고 어색하기만 할까..”
 
데뷔 10년차 싱어송라이터 곽푸른하늘(본명)과 지난 6일 남산 야외식물원 인근을 걸었다. 최근 6년 만에 정규 3집 ‘Nearly (T)here(니얼리 데어)’로 돌아온 그다. 식물원 입구에서 만난 우린 약수터까지 오르며 “예술적 영감”의 질료가 되는 산책의 미학을 함께 돌아봤다. 반대편 복작대는 이태원 도시의 잿빛을 등지니, 노란 버들과 연유색 살구꽃이 모네의 화폭처럼 옅게 흐드러졌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로 흘러간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살아가는 방식임을 깨닫게 됐어요. 스스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팬데믹을 거치며 삶은 점차 비워졌다. 채움과 비움은 때론 생의 순간들을 밀물 썰물처럼 변주하는 파도 같은 것이라서. “코로나 직전 1년을 쉬었어요. 정말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안했어요.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2년을 집에 더 있게 됐고, 음반 작업이 길어졌네요.(웃음)” 밤이면 무작정 이날처럼 산책을 했다. 여백의 심원한 우물을 들여다보며 질문들을 길어 올렸다. 
 
데뷔 10년차 싱어송라이터 곽푸른하늘과 지난 6일 남산 야외식물원 인근을 걸으며 산책 인터뷰를 했다. 사진=씨티알싸운드 
 
앨범 제목 ‘Nearly (T)here’의 괄호 역할이 알쏭달쏭하다. “등산을 하다보면 왜 모르는 분들로부터 그런 말 듣잖아요. ‘거의 다 왔어’.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믿고 계속 가볼 힘이 생기죠. 음악 생활 10년 동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디쯤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본다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게 거기(There)든, 여기(Here)든, 아님 어딘가(Where)든.”
 
앨범을 여는 첫 곡 ‘All You Need’는 도입부터 나일론 기타의 잔잔한 스트로크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속삭이듯 서걱거리며 다가오는 사색적인 목소리는 잔잔하고 차분한 톤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전작들에서 첼로 즉흥연주부터 비브라폰 같은 음색들을 수혈했다면, 이번 앨범 주요 수록곡들에선 바이올린 선율이 청량한 풍랑처럼 휘감겨온다. 
 
그러나 비교적 심오한 단조 선율을 중저음으로 곳곳에 배치시킨 앨범이 시종 밝은 기운만 뿜는 것은 아니다. 콘트라베이스와 나일론·일렉 기타, 지하철 잡음(앰비언트)이 뒤섞이는 타이틀곡 ‘Coyote’는 후반부 바이올린이 활강하는 다이내믹한 악곡으로 감정의 등고선을 풀어낸다. 악몽을 부정적 기억에 은유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만화 루니툰즈 캐릭터인 코요테가 나오는 악몽을 꾼 적이 있어요. 그 꼬리를 잘라내듯. 나쁜 기억일지라도 결국엔 나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앨범을 결국 ‘선택’에 대한 이야기에요. 쭈그리고 있을지, 앞으로 나아갈지, 결국 내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결정하느냐의 문제인 것이죠.”
 
데뷔 10년차 싱어송라이터 곽푸른하늘(본명)과 지난 6일 남산 야외식물원 인근을 걸으며 산책 인터뷰를 했다. 도시 풍경에 관한 더블 타이틀곡 ‘도시+하니랜드’를 설명하던 중 시민들이 운동을 하자, "오늘 이 풍경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사진=씨티알싸운드 
 
더블 타이틀곡 ‘도시+하니랜드’는 각각 작업한 두 곡을 합친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깔끔한 연주를 펼치다(‘도시’), 일렉트릭 기타의 공간계 잔향을 4겹으로 겹친 사운드의 몽환미가 돋보인다.(‘하니랜드’) 그는 “집 근처 파주 인근 인적 없는 놀이공원 ‘하니랜드’를 갔다가 그곳의 미스터리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잠깐 누워 있다, 텅 빈 느낌을 받아 쓴 ‘도시’와 합쳐봤다”고 했다.
 
수록곡 ‘Wild Meadow Ballroom’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나일론 기타가 겹쳐내는 현 선율과 왈츠 같은 리듬은 가상의 들판, 초록으로 청자를 이끈다. 팬데믹 시기의 답답함을 바람에 날리듯 유려한 멜로디가 불어온다. 동화적 상상이 엿보이는 노랫말들은 달콤한 파스텔톤 같다. 수채화 색감을 떠오르게 하는 그의 본명처럼.
 
앨범 전반적으로 힘을 뺀 기타 사운드는 그의 산책자적 시각과 닮아 보였다. 목소리는 원테이크로 녹음하느라 1년 2개월 가량이 걸렸다. “기타 선율을 의도적으로 쉽게 만들었거든요. 목소리가 표현할 수 있는 바를 최대치로 해보고자. 위로와 희망이 담겨있으면 했어요.”
 
6년 만에 정규 3집 ‘Nearly (T)here’으로 돌아온 싱어송라이터 곽푸른하늘 공연 모습. 사진=씨티알싸운드 
 
20살이 채 되기 전, 대안학교 졸업 결과물로 1집 ‘있는 듯 없는 듯(2012, 음저협 등록 2014년)’을 냈다. 중학교 땐 밴드부에 들어가 너바나와 그린데이, 에이브릴라빈의 음악을 동경하며 카피했다. 엠넷 ‘슈퍼스타K 7(2015)’ 출연, 정규 2집 ‘어제의 소설’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포크 부문 노미네이트. “사실 1집이 세상에 나올 줄 몰랐고 그 후로 음악을 해도 되는지 곰곰이 생각을 했었다”는 그는 “지금은 제가 어디까지 해볼 수 있나 궁금하다”고 했다. “아직도 작곡할 때가 가장 좋거든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거잖아요.”
 
이번 앨범은 반드시 라이브 연주로 들어봐야 한다. 트럼본, 콩가 드럼, 클라리넷, 신디사이저, 그리고 연주자들이 입으로 내는 물방울 소리까지 ‘소리의 숲’을 조성하기 하기 때문이다. 울릉도 앞바다 같은 자연미의 영상은 코로나로 지친 심연을 달래준다. 지난달 29일 서울 홍대 왓챠홀에서 연 단독 공연은 그 증명의 현장이었다.
 
그가 초록이 우거진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음악이 사람들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 같았으면 해요. 누구에게는 이불 속일 수도 있고, 부모님 댁일수도 있겠고요. 듣는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곳, 지금 당장 갈 수 없더라도.”
 
지난달 29일 서울 홍대 왓챠홀에서 열린 곽푸른하늘 3집 발매 기념 단독 공연. 사진=씨티알싸운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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