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30주년 빛과 소금 “‘살아있음’ 증명”

시티팝 재조명되며 젊은 층에 인기…26년 만에 정규 6집 음반
“신선한 피톤치드 흡수하듯…편안한 여백의 음악언어 구사”

입력 : 2022-06-08 오후 4: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오늘은 짙게 푸른 하늘/그 위에 너를 그려 보네’(‘Blue Sky’ 중)
 
화사한 선율의 돛이 오르면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미디엄 템포의 팝 퓨전 사운드가 세기를 횡단한다. 도회적이고 세련된 화성과 청량한 리듬, 풍경의 물감을 푸는 회화적 가사….
 
“‘우리 여기 그대로 있다’는 선언적 의미가 있죠.”
 
그룹 빛과 소금, 두 멤버(박성식·장기호)가 6집 ‘Here we go’로 돌아왔다. 1996년 5집 ‘천국으로’ 이후 26년 만의 정규 음반.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운드트리에서 만난 멤버들은 “결성 30주년을 맞아 빛과 소금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세월이 흐르니 음악에 자연스레 ‘여백의 언어’가 묻더라”며 웃어 보였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운드트리에서 만난 그룹 빛과 소금, 두 멤버(왼쪽부터 장기호, 박성식). 사진=사운드트리
 
동아기획 사단이자 봄여름가을겨울과 사랑과 평화의 전 멤버, 김수철, 정원영, 김현철, 고 김현식(1958~1990), 유재하(1962~1987) 등과 교류하며 한국 대중음악을 선도한 ‘뉴 웨이브’ 집단.
 
1990년 대표곡 ‘샴푸의 요정’이 실린 데뷔작은 한국 시티팝의 원형이자, 팝 퓨전 영역을 개척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레트로 시티팝이 재조명되고 바이닐(LP) 붐 현상이 일면서 김현철, 산울림, 아침, 시인과촌장 등과 함께 이들 음악은 재차 세상 밖으로 불려나오고 있다.
 
급기야 2019년 R&B 가수 정기고, 2020년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혼성 듀오 도시(dosii) 등이 잇따라 리메이크 음악을 내놓기까지 했다. 선풍(旋風)의 진원은 MZ세대다.
 
“2019년 서울레코드페어 LP 재발매 사인행사 때 구매 행렬을 보니 80%가 20~30대더군요. 우리 음악이 저변 확대가 됐구나 새삼 실감했어요.”(장기호)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운드트리에서 만난 그룹 빛과 소금, 두 멤버(장기호, 박성식). 사진=사운드트리
 
10곡이 수록된 신작은 세월의 격차를 단숨에 넘어선다. 첫 곡(‘Blue Sky’)에는 ‘팬데믹 시기 답답함을 뒤로 하고 푸른 하늘에서 마음껏 날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국경 초월의 인류애를 담고자 영어와 한국어 가사 두 버전으로 불렀다.
 
소리를 이루는 정갈하고 미끈한 연주의 배합은 오늘날 먹먹한 무채색 일상에 반짝이는 프리즘을 투과한다.
 
“비틀스, 스팅, 마이클 잭슨, 그리고 제가 모르고 썼던 ‘샴푸의 요정’…. 95년 유학길에 오르고 모드(mode)라 불리는 선법 작곡에서 팝의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Blue Sky’에서는 밝은 느낌의 아이오니언(Ionian) 모드를 써봤습니다.”(장기호)
 
멤버 각각이 따로 프로듀스해 음악적 개성과 자율성이 기존 음반들보다 두드러진다. 작곡 작사부터 녹음실과 뮤지션, 엔지니어 섭외, 예산 책정까지 스스로의 곡 분위기에 맞게 달리하는 실험을 택했다. R&B 스타일의 곡 ‘오늘까지만’에는 빛과 소금 음악 사상 최초로 랩(신예 래퍼 서출구 참여)이 삽입됐다. 6분짜리 연주곡 ‘비 오는 숲’은 피아노 타건 위에 겹쳐지는 드럼 브러쉬가 브라질리안 발라드처럼 청량한 화폭을 그려낸다.
 
“녹음 때, 혹은 편곡 과정에서 제 스스로가 행복이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면 듣는 이도 그렇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정 시기나 상황에 관계없이. 음악만큼 우리 감성을 조정하고 치유해주는 예술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박성식)
 
그룹 빛과 소금, 두 멤버(박성식, 장기호)가 6집 ‘Here we go’로 돌아왔다. 1996년 5집 ‘천국으로’ 이후 26년 만의 정규 음반. 사진=사운드트리
 
26년의 공백 기간 동안 두 사람은 베이스나 건반 대신 분필을 쥐고 있었다. 각각 서울예대(장기호), 호서대(박성식) 실용음악학 교수로 교단에 서왔다. 그러다 지난 2019년 김종진과 낸 ‘봄빛(봄여름가을겨울+빛과 소금)’ 프로젝트성 앨범과 시티팝 붐의 귀환은 이번 신보 작업의 기폭제가 됐다.
 
“손가락이 안 돌아갈 정도로 음악과 멀어져 있었는데, 젊은 층에서 좋아해주시니 도리어 ‘정규 음반 안내면 큰 일 나겠다’ 하는 생각에 채찍질이 됐네요. 자녀 또래의 음악 팬들을 보면 아직도 얼떨떨합니다.”(장기호, 박성식)
 
김현식의 대표곡 ‘비처럼 음악처럼(1986)’ 작곡·작사자이기도 한 박성식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 음악의 감성까지 변화한 건 아니다”라며 “그 노래가 24세 때의 언어였다면 지금은 지금대로 여백의 음악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듣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30년 전 음반을 냈을 때와 지금과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 커졌고 고 죽기 전 남겨놓고 가야 할 음악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이제는 사명감으로, 작은 유산이라도 남겨놓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40~50주년까지 활동해봐야죠.”(박성식)
 
오는 7월23일에는 서울 노들섬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스마일러브위크엔드’ 무대에 김현철, 유키카, 수민 등과 함께 오른다.
 
이들은 이번 앨범을 고즈넉한 삼림욕장처럼 들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건넸다.
 
“건강한 기운을 전해줄 수 있는 음악이에요. 신선한 피톤치드를 흡수하듯. 안개비 같은 부슬비가 살짝 내려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그것보다 행복한 정경은 없지 않을까요.”(장기호, 박성식)
 
그룹 빛과 소금, 두 멤버(박성식·장기호)가 6집 ‘Here we go’로 돌아왔다. 1996년 5집 ‘천국으로’ 이후 26년 만의 정규 음반. 사진=사운드트리
 
<에필로그: 빛과 소금, 시티팝 붐, 그리고 결성 30주년>
 
-결성 30주년을 맞아 여행 인터뷰를 한다고 가정하면, 어디서 해보고 싶으실까요.
 
“동부이촌동,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서울스튜디오에서 해보고 싶네요. 저희 1집을 녹음했던 역사적인 장소였죠. 허허.”(박성식)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 스튜디오였죠. ‘동아기획’ 출신 음악가들 전부 거기서 녹음했었고. 1집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붙잡고 3개월 정도 매달렸던 기억이 있네요.”(장기호)
 
-말씀하신대로 1집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녹음하셨다고 봤고, 2~5집은 리얼악기로 녹음하신 것으로 압니다. 특히 5집(1995)은 미국 보스톤에서 버클리 음대 교수님들과 녹음했다고 알고 있는데 당시 어떤 점들을 배우셨나요.
 
“5집은 저희 스스로도 지금까지 낸 앨범 중 가장 잘 다듬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음악이 공통의 언어라고 하더라도 특유의 그루브는 차이가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드러머가 콩나물 걷어낸 악보로 리듬만 연주하고 있는데도 노래가 붙을 수 있구나’ 알았습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브라이언 블레이드, 알 재로... 자세히 들어보면 거의 그 공식을 따르고 있어요. 물론 이번 음반의 경우도 1집부터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조금 더 개개인의 색깔이 잘 묻어나는 가운데 빛과 소금만의 스타일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퀸시 존스 음반처럼 보컬은 훌륭한 가수분께 맡기고 우리가 프로듀싱 음반만 내는 방법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장기호)
 
-두 분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만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어떤 기억들이 나시나요.
 
“70년대에는 대중음악보다 교회 성가 수준이 굉장히 높았어요. 그래서 저나 기호나 고등학교 때까지 자연스럽게 거기서 음악 공부를 하게 된 거죠. 통기타와 포크음악이 유행하던 시절이기도 해서 송창식 씨 음악을 들으면서 카피하며 공부했죠. 기호와도 한동네 살았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다보며 만나게 됐었습니다.”(박성식)
 
“졸업하고 재수 때, 숙대입구와 남영역 사이쯤 레코드샵이 있었는데, 그때 디스코부터 재즈음악을 많이 흡수하게 됐어요. 당시 교복 입은 종진(봄여름가을겨울)이가 히피머리 하고 ‘형’ 하면서 따라왔던 생각도 나고요. 하하. 태관(봄여름가을겨울)이랑 재하(유재하)가 또 친구였고, 김광민, 한상원... 마이클 프랭크스 같은 음악을 들으며 ‘동아리’처럼 만나 음악하던 그 시절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장기호)
 
-최근 젊은 층 중심으로 일고 있는 시티팝 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
 
“시티팝이란 용어는 저희가 앨범을 낼 때만 해도 없던 용어였어요. 재즈나 록, 가스펠을 섞은, 즉 전통 비밥이나 스윙에 여러 장르 영향을 더한 음악을 일본 영향으로 ‘퓨전’이라 했는데, 그런 퓨전 재즈라면 당시 미국 본토 나름의 문법과 억양이 있었죠. 우리 음악은 재즈는 아니었고, 다만 그 영향을 섞어낸 ‘팝 퓨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장기호)
 
“사실 엄밀하게 앨범을 내놓은 것이 시티팝 열풍 때문만은 아니에요. 30주년 기념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구상이 있었고, 처음에는 디지털 싱글로 내려다가, 기왕이면 정규 음반으로, LP로 가보자 해서 이렇게 판이 커졌죠.”(박성식)
 
“분명한 것은 연주가 강조된 대중음악을 우리 역시 초창기에 했던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우리끼린 농담 삼아 이렇게 구분해요. 술 먹다가 젓가락만 두들겨서 멜로디와 노래가 나오지 못하면 그건 ‘우리 영역(시티팝이나 퓨전 팝)’ 맞다고.. 그만큼 편곡의 영향, 악기 연주의 디테일함이 크다는 의미죠. 하하.”(장기호)
 
-20여년간 교단에서 분필을 쥐었다가 2017년 퇴직하셨고(장기호), 20년 만에 안식년을 받으시면서(박성식), 이번 활동이 가능해졌다고 봤습니다. 음악 교육자로서의 지난 세월에 대한 소회는 어떠신지요.
 
“교수의 삶이라는 게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아요. 수업 외에도 의무적으로 한 학기 동안 학생들 면담을 해야 하고, 취업을 위해서도 물심양면 힘써야하거든요. 그 와중에 개인적인 음악 프로젝트를 하시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죠. 제가 안식년을 받아 이번 활동이 가능하게 됐는데, 앞으로는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곡도 쓰고 활동도 해보려 합니다.”(박성식)
 
“방학을 이용해서 20주년 기념 공연까진 할 수 있었어요. ‘음반 내보자’ 얘기는 많이 했지만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이렇게 오래 걸렸네요.”(장기호)
 
“잠깐, 애플워치가 일어설 시간이래!”(박성식)
 
(둘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웃는다.)
 
“건강 잘 챙기면서 7집, 8집, 9집, 10집까지 가봐야죠. 하하하.”(박성식)
 
그룹 빛과 소금, 두 멤버(박성식·장기호)가 6집 ‘Here we go’로 돌아왔다. 1996년 5집 ‘천국으로’ 이후 26년 만의 정규 음반. 사진=사운드트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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