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평산마을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양산=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21일 오전 9시14분.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애국가가 조용하던 평산마을을 깨웠다. 애국가가 4절까지 끝난 후에는 곧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한 육성 시위가 이어졌다. "간첩 문재인 체포해, 간첩 문재인을 왜 세금 들어가며 보호해 주는 거야, 간첩 문재인 끄집어내." '문죄인 사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고 나타난 한 남성은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직선으로 80m가량 떨어진 펜스 밖에 서서 계속해서 '간첩 문재인, 간첩 문재인'을 외쳤다. 이날 오전부터 오후까지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욕설 시위가 쉴틈없이 이어졌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은 경찰과 경호원들의 통제로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고, 외부인은 건너편 도로에 설치된 펜스 앞까지만 접근이 가능했다. 펜스와 나란한 방향으로 이어진 철제줄 위에는 '4·15 부정선거' 문구가 새겨진 깃발과 성조기, 태극기, 새마을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어 바로 밑에 줄에는 금색과 은색 수갑이 셀 수 없을 만큼 길게 걸어져 있었다. 시위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수갑을 직접 줄에 걸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도로 밖 철조망에는 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현수막 여러 개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국민의 주적 문재인은 처형!, 국민의 재판으로 문재인 사형!', '내로남불 문죄앙', '간첩 문재인 XXX야!' 등의 섬뜩한 내용의 문구가 쓰여 있는 현수막이 뒤쪽 철조망에 걸렸다. '사랑하는 대통령님 솔선수범해서 임대주택 살아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있었는데, 이는 임기 동안 집값을 크게 올린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아냥으로 해석됐다. 거꾸로 세워놓은 문 전 대통령의 등신대도 보였는데, 사진 가운데에는 노란 글씨로 '살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산에서 온 한 시민은 이런 광경을 보고 "(문 전 대통령이)전라도, 광주에 살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시위 차량으로 인해 교통이 혼잡해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차량이 두 대 남짓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지만, 시위 차량이 한쪽을 차지하면서 차가 연이어 올 때는 잠시 지체될 정도로 막히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또 시위 장소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임에도 이곳이 정류장인지 모를 정도로 현수막과 시위 용품에 가려져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평산마을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육성으로 시위에 나선 남성은 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사저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고함을 쳤다. 문 전 대통령을 향해서는 "간첩 문재인 체포하라"고 했고, 김 여사에게는 "정숙아 강화도에서 어르신 왔다, 정숙아 인사 좀 해, XXX가 없어서 어르신이 와도 인사를 안해"라고 소리쳤다. 휴대폰으로 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을 촬영하고 있던 또 다른 남성도 김 여사를 향해 "정숙이 옷값 공개하라, 특활비를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문 전 대통령에게 "공무원이 월북을 했다는 이유도 즉시 공개하라"고 외쳤다. 오전 9시41분부터는 스피커로 노래 소리가 들렸다. '조국의 원수를 막아내어'라는 가사가 나오는 반공가였다. 노래는 오전 내내 문 전 대통령 사전 주변을 휘감았다.
육성 시위를 한 남성은 이전보다 시위 강도가 약해졌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것저것 다 못하게 하고 있어서 목소리로 하고 있다"며 "확성기도 자제하고 있는데, 몇 번 제재하면 그 다음에 금지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확성기는 가끔 가다 한 번 한다. 오전 중에 확성기 사용은 조금 부담이 있고, 오후 쯤에 한다. 2, 3시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때가 하이라이트"라고 했다.
오전 11시까지 남성 2명이 육성과 확성기로 시위를 진행했지만 11시 이후부터 점차 시위를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오후 2시에는 10명까지 늘어났다. 사저 주변 경찰 인력도 오전 2명에서 4명으로 추가됐다. 또 확성기로 시위하는 남성 1명이 추가로 참여해 문 전 대통령을 향한 비판에 열을 올렸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5년 동안 감방에 산 것도 억울한데 집 한 채도 팔아쳐 먹고 니가 사람이가. 빨리 박근혜 전 대통령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또 다른 스피커에서는 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입만 열면 거짓말쟁이야. 통계 조작, 지지율 올려 얼마나 잘했냐. 국민들 마음 속에 원망이 쌓인다'는 내용의 가사가 입혀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평산마을. (사진=뉴스토마토)
양산 평산마을은 이전까지만 해도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이었다. 도로 주변에는 '평화로운 산속마을 평산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도 있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평산마을에 오기 열흘 전부터 시위대가 마을 주변에서 집회를 하면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계속되는 소음으로 신음 중이다. 사저 인근에는 '집회로 인하여 노인들 병들어 간다', '농장 소음으로 인하여 농작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성장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시위로 인한 소음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은 주민도 있었다. 문 전 대통령 사전 근처에 살고 있는 40대 남성 박모씨는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시위 소리 때문에)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며 "지금은 약을 먹고 있는데 나이가 있으시니까 안 좋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쪽 분(문 전 대통령)한테 하는 이야기라지만 마을 주민들까지 다 들어버리니까 매우 힘들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에서 감자 농사를 하고 있는 남성 주민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시위 때문에 작물이 안 자란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데 대해 "법대로 하라는데 저런 시위를 두 달 동안 계속 들어봐라, 그런 소리 나오나"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감자 농사를 지켜보던 여성 주민도 "저는 (이 동네)밑에 살아서 잘 모르는데 여기 사람들은 불편할 것"이라며 "사람들이 괜히 조용한 도시에 와가지고"라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평산마을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하는 일반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지만, 이들은 시위자들의 욕설과 소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50대 남성 소모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든, 박근혜 전 대통령이든 대통령은 대통령 아니냐"며 "좋은 분도 있고, 나쁜 분도 있는데 이런 걸 떠나서 시위는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찌 보면 자연인이고, 노인네고, 어르신"이라며 "전두환이 아닌 이상 편안하게 해주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자신을 문 전 대통령 지지자라고 밝힌 부산에서 온 50대 남성 강모씨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위는 가능한데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국민들 여론은 이 같은 욕설 시위에 매우 부정적이다. 앞서 지난 17일 공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40차 정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43.6%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부 보수단체의 '욕설 시위'에 대해 공권력 투입 등 적극적 조치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위 수위를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는 응답도 27.1%였다. 반면 집회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18.6%에 불과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양산=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