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갈등 키워드 중 하나는 '불평등'이다. 경쟁과 평등이라는 갈림길에 놓인 사회적 불평등은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수십 년간 고착해온 고질적 폐단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향한 패러다임 대전환의 요구와 맞물리면서 불평등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산업, 노동, 금융, 교육 등 각 분야의 경제적 불평등은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향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역사를 통해 배웠듯, 1929년 대공황 시대에 불평등의 탈출로는 '뉴딜 정책'이었다. <뉴스토마토>는 '신 불평등 사회' 연중기획을 통해 현 시대에 당면한 한국 경제의 불평등 문제를 진단하고 갈등이 아닌 공존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김현주 기자] # 척수장애인 A씨는 평소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전동휠체어는 일반 휠체어보다 부피가 크다. 자기 힘만으로 소변을 배출하기 어려운 척수장애 특성 탓에 척수장애인은 방광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크다. 하지만 A씨가 휠체어를 타고 갈 만한 건강검진기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
A씨 사례처럼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시간과 인력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장애인 건강검진에 민간 의료기관이 뛰어들 유인책이 없어 사업은 수년째 목표 달성을 못하고 있다.
28일 <뉴스토마토>가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8년부터 실시한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목표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 사업 시행 이후 목표가 달성된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연도별로 보면 지난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 목표는 20개소였으나 실제 3곳만 지정됐다. 시행 첫 해인 2018년에는 목표 10개소에서 8개만 지정했다. 2019년에는 20개소 목표에 8개소만 지정됐다.
2020년에는 17개 목표로 총 6억29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됐지만 단 한 개소도 지정되지 않았다. 올해 목표는 20개소로 지난달 29일부터 공모에 돌입했지만 지정 확대 여부는 미지수다.
28일 <뉴스토마토>가 보건복지부를 통해 얻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 목표는 20개소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 3곳만 지정됐다. (그래픽=뉴스토마토)
◇ 늦게 발견하는 '병'…더 높은 사망률
비장애인과 달리 건강검진을 받는 장애인 비율은 전체에 비해 10%포인트 적은 수준이다. 지난해 국립재활원이 발간한 '장애인 건강보건통계'를 보면 장애인의 일반 건강검진 수검률은 2019년 기준 64.6%였다. 일반건강검진을 기준으로 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을 보면 2015년 63.5%, 2016년 64.8%, 2017년 64.9%로 나타나 60% 초중반대에 머물렀다.
반면 2019년 기준 전체 일반건강검진 수검률은 74%다. 장애인 일반건강검진 수검률과 약 10%포인트 차이가 벌어진다. 2020년 집계는 올해 연말 발표를 앞두고 있지만 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과 일반건강검진 수검률 격차는 해마다 더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건강검진을 가도 시설 미비 등의 이유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국립재활원이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51.2%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건강검진 완수율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4명 중 1명이 진단용 X선 촬영장치(X-ray) 검사를 받지 못하고 건강검진을 끝냈다.
병이 있어도 빨리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애인 사망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높다. 인구 10만명당 사망률을 나타내는 조사망률은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539.9명, 장애인 3009.6명으로 나타났다. 일정 기간 동안 장애인 사망이 비장애인 사망보다 5배 많다는 뜻이다.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3.7배 많았고, 뇌혈과 진환은 7.2배 많았다.
정부는 이러한 불평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제3차 국가건강검진종합계획(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국가건강검진 추진 방향과 과제를 담은 계획에는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지정과 지원을 확대하는 등 장애인 건강검진 여건의 개선 내용이 담겨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까지 100개의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기관 지정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2022년 7월 기준 전국에 지정된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은 19개에 불과하다. 사진은 국립재활원 장애인 건강검진센터 개소식 모습. (사진=보건복지부)
복지부는 2024년까지 100개의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기관 지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7월 기준 전국에 지정된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은 19개에 불과하다. 그 중 장애친화 지원 서비스 개시가 완료된 곳은 9곳 뿐이다.
지원 서비스 개시가 완료됐던 원주의료원이 지난해 말부터 내진 보강 사업을 하고 있어 실제 운영되는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은 1곳 줄어 8곳 뿐이다. 나머지 11곳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편의시설 개보수 등을 준비 중이다.
지역별 격차도 크다. 충청북도와 충청남도, 전라남도에는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기관이 단 한곳도 없다.
◇ 돈 논리…"공공성 측면서 유인책 늘려야"
민간 건강검진 기관들이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공모에 참여할 유인책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임선정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부장은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지정을 받으면 장애인 분들이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찾아 온다. 한 명에게 소요되는 시간이나 인력이 (비장애인과 비교해) 더 많이 들어간다. 건강검진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민간 쪽에서는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에 참여할 유인책이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지정되면 복지부가 시설·장비비로 1억1400만을 지원한다. 중증장애인이 건강검진을 받는 경우 기본 검진비용을 제외하고 건당 3만7770원의 장애인 안전편의관리비를 지급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충분하지 않다는 토로다.
지방의료원의 공공성을 고려해 지방의료원 35개를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으로 지정하는 '장애인건강권법'개정안이 대표발의됐다. 지난 3월 이종성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임선정 부장은 "기본적으로 시도 단위에는 당연히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이 마련돼야 하고 더 추가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장애 유형에 따라 시설 기준을 특화해 시설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전동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보다 더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 그것을 고려해 모델을 다양화 하는 것"라고 덧붙였다.
28일 <뉴스토마토>가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8년부터 실시한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 목표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 사진은 휱체어 탄 시민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김현주 기자 kkhj@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