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유승호 기자] 정부와 낙농가의 갈등으로 공전 상태였던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논의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원가 부담으로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유업계의 부담이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5일 유업계에 따르면 이달 중순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낙농진흥회는 유제품 수급조절 등을 위해 설립된 기구로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원유가격을 유업계가 따른다. 업계에서는 이번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열리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등 낙농제도 개편안이 통과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해 음용유의 가격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 가격은 더 낮게 책정하는 제도다. 유제품 소비가 늘어나는 만큼 치즈 등을 만드는 가공유 가격을 낮춰 국내산 원유의 구매 여력을 높이고 유가공업체의 부담을 덜겠다는 게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취지다. 정부가 기존 원유가격연동제를 폐기하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확실하게 하자 낙농가는 거세게 반발하면서 논의가 공전됐다.
하지만 지난 2일 농림축산식품부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조합장, 생산자단체, 유가공협회 등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 도입 논의가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이들은 제도 도입 초기 생산량을 기준으로 195만톤은 음용유 가격을 적용하고 이후 추가 생산되는 10만톤은 가공유 가격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외국산 멸균우유'가 진열돼있다. (사진=뉴시스)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도입될 경우 유업계 부담은 현재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그간 우유 생산비를 기준으로 원유가격을 결정하다보니 유업계 부담이 컸다. 특히 시장에서 우유 소비가 줄어도 원유 가격은 오르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유업계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원유를 들여와 치즈 등 유제품을 만들어왔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원유 가격은 72.2% 올랐다. 반면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6.3㎏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9년(24.6㎏)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국내 우유 자급률 역시 2011년 77.3%에서 지난해 45.7%로 감소했다.
이에 국내 주요 유업체들의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
매일유업(267980)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2% 줄어든 308억원으로 나타났다.
남양유업(003920)도 같은 기간 42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이 감소한 영향도 있었지만 원재료 부담 등 수익성이 악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유업계 관계자는 “우유 소비량은 줄어드는 데 우유 가격은 계속 오르면서 유업계의 가격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면서 “용도별 가격 차등제를 도입하면 업체의 제품 생산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열려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내용이 결정되더라도 세부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해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유가공협회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논의 재개에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음용유 195만톤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음용유 195만톤도 필요 이상의 양을 받아가는 것이라서 그만큼 손실이 생기는 상황인데, 장기적으로 조정이 되겠지만 현재는 부담스럽다”며 “정부 예산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pe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