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밥상물가' 때문에 백성들의 시름은 깊었다. 1595년 3월 24일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며칠 동안 식사를 못 하는 어머니를 위해 생선 장수가 마을로 들어오자 광어는 쌀 1되, 생도미 2마리는 벼 2두를 주고 산다. 어머니께서 맛있게 식사하시는 모습에 흐뭇했지만, 전보다 비싸진 생선 값에 마음은 편치 않다. 전란 중에 하루 양식을 써버려 근심이 깊어진 오희문의 걱정은 오늘날 우리의 물가 걱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중기 충남 덕산의 선비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일기에서도 갓을 팔아 감 10첩을 사고 면포나 신발을 팔아서 보리를 마련하며 물가오름을 걱정한다. 한국국학진흥이 '그건 얼마였을까?'라는 주제로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은 '담談'속 이야기다.
추석이 하루앞으로 다가온 이때 국민 대다수의 걱정은 '고물가'다. 물가 오름세에 폭염과 폭우가 겹쳐 작황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초강력 태풍 힌남도까지 지나가면서다. 제수용품을 마련하기 위해 장바구니를 그득 채우자니 부담스럽고, 부족하게 채우자니 아쉬운 마음뿐이다.
추석 선물도 가벼운 지갑을 탓해야 할 판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3만원·5만원 미만의 '가성비' 선물세트에 소비자가 몰렸다고 한다. 중고마켓도 성했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중고마켓에서 추석 선물을 구매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20% 가까이 뛴 선물가격 부담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이 맞교환을 하거나, 회사에서 받은 선물을 되파는 '명절테크'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물가는 추석이후가 더 큰 걱정이다. 정부는 9~10월 물가 정점을 찍고, 내려갈 것으로 보고있지만 일각에서는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양상, 국제유가 추이, 기상 여건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유통업계는 연일 가격인상 소식을 전하기에 바쁘다. 특히 일상식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우유와 야쿠르트, 라면, 컵밥 등 줄줄이 가격인상을 발표했다. 햄버거, 피자 등 외식상품도 죄다 오름세다.
농산물 가격 전망도 어둡다.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상처로 주요 농수산물의 가격이 더 뛸 수 있다. 김장철도 다가오는데 이미 배추값은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금값이 되고 있다. 포장김치 제조사들 역시 배추와 무 재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김치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포장김치 품절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업체들은 물량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가을 배추가 나오는 10월 중순 정도는 지나야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조선시대 옛 선조들은 밥상 물가가 치솟아도 뾰족한 대책없이 한숨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가 물가대책을 세우고, 유통업계들이 치킨 ·피자 등 '반값 전쟁'을 치르는 등 물가안정에 노력을 꾀하고 있다고 하지만 체감물가는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식물가든 식료품이든 업계에서는 제반비용 상승 여파가 크다는 점을 이유로 줄줄이 가격인상을 하고 있지만, 제반비용이 하락할 때 가격을 인하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추석 이후에도 우리는 '한숨'만 쉬고 있어야 할듯하다. 국민들이 고물가에 시름하고 있는 이때 고통을 분담하든지, 혹은 물가가 하락할 때라도 가격을 인하하는 업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테니 말이다. 가격은 오르기만 할 뿐이다.
김하늬 산업2부 팀장